[한경에세이] 소송마니아
개인적으론 바흐를 좋아하지만 베토벤이 최고의 작곡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베토벤은 고전음악의 완성자이고 여러 난관을 극복한 위대한 작곡가다. 그런데 베토벤이 제수인 요한나와 조카의 후견권을 둘러싸고 엄청난 소송전을 벌인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베토벤은 처음 소송에서는 후견자격을 인정받았으나 관할이 문제돼 나중에 후견자격을 박탈당했고, 다시 소송을 걸어 겨우 후견자격을 인정받았다. 또한 베토벤은 자기를 후원하던 공작이 사망하자 그 상속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후원금을 계속 받아내기도 했다.

법원에는 베토벤보다 훨씬 심한 ‘단골고객’들이 있다. 그들은 법원에 계속해 수많은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 중에도 끊임없이 불필요한 증거를 신청하고 소송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의신청하고 불복한다. 때로는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한다. 어떤 재소자는 종전 재판에 대해 끊임없이 재심을 청구하고, 교도관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고소하거나 위자료를 청구하면서 수감 중에 법정에 출석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사건들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다소 억울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사유로 패소하면서 억울함이 사무치고 분노가 폭발하면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무의미한 소송에 빠져들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송 마니아가 돼 있다.

최초 사건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재판 속성상 억울하다고 해서 반드시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 억울해도 패소하는 이유는 시효가 지났거나 상대방을 잘못 짚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입증에 실패했을 수도 있으며, 피고에게 원고보다 더 억울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재판을 하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재판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판결의 논리를 정확히 이해한 뒤 그것에 승복할 수 있으면 승복하고, 만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주어진 제도의 틀 안에서 상소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보면 충분하다.

상급심의 확정 판단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가지고 제2, 제3의 소송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남은 삶을 피폐하게 한다. 자신의 발가락이 괴사했다면, 그 원인이 자기가 잘못했든지 혹은 상대방이 잘못했든지 아니면 치료과정에서 의사가 잘못했든지 간에 그 발가락을 잘라내야 한다. 의사나 상대방을 탓하면서 발가락을 살려보겠다고 제때 잘라내지 않으면 나중에 발목 혹은 무릎이나 허벅지까지 잘라내야 할지 모른다. 사즉생(死則生)이라는 말은 소송에서도 타당하다.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