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여전히 위험한 에어컨 수리 현장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최근 삼성전자 서비스에 에어컨 수리를 의뢰했을 때 일이다. 기자는 아파트 14층에 사는데, 에어컨 수리 기사는 아무 안전장치 없이 실외기 프레임에 몸을 의존해 작업을 했다. 조심하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시간에 쫓긴 기사는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지난달 25일 에어컨 수리 기사가 작업 도중 추락해 사망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현장은 변한 게 없었다.

“왜 이렇게 위험하게 수리하느냐”고 물었다. “사다리차를 부르면 3일 뒤에 오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3일 뒤에 수리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고객들이 가만있지 않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왜 사망사고 이후에도 현장은 그대로일까. 원인은 복잡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삼성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리 기사 중 외주 인력 비중이 높은 것은 여름 한철을 위해 삼성이 수많은 수리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삼성은 사다리차가 필요한 경우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협력회사에 안전지침도 반복해서 전달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나면 도마에 오르는 것은 결국 삼성이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협력업체에는 수리 자격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의 책임도 크다. 지난달 사망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형식적인 단속을 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수당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기본적으로 에어컨 기사들은 한 시간에 한 건의 작업을 처리해야 수당을 받는다. 건당 받는 돈은 많지 않다. 수리 기사는 한 시간에 한 건을 처리하기 위해 안전장비를 갖출 틈도 없이 수리에만 매진하게 된다. 기사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 적은 수당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안전수칙을 어기며 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의 집에 온 수리 기사는 다음 방문에 10여분 늦었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한참이나 호통을 들었다. 수리 기사는 온 몸이 땀에 젖은 채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뛰어가야 했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