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가 의외의 배출가스 시험 결과를 하나 내놨다. 당시 시중에 운행되던 디젤 승용차를 대상으로 실제 주행 때 질소산화물이 얼마나 검출되는지 실험이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05년 이후 생산된 현대차 투싼, 싼타페, 기아차 스포티지, 쏘렌토, 베라크루즈, 카니발 등 12개 차종에서 질소산화물이 기준치의 11배 이상이 검출됐다. 이외 한국지엠 윈스톰, 쌍용차 액티언 등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고, 조사 대상에 포함된 수입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의 질소산화물이 과다 배출되는 시점은 '에어컨'이 작동할 때였다. 에어컨이 켜지면 질소산화물 저감장치(EGR)가 꺼지도록 설계한 게 문제가 됐다. 그런데 당시 국내 규정에 에어컨 작동 때 배출가스를 측정하는 기준이 없었던 만큼 모든 수입 및 국내 제조사가 자발적 조치를 취하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나아가 환경부는 해당 사안을 두고 제조물의 품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칼럼]폭스바겐의 자발적 판매 중단을 보는 시선

현재 문제로 떠오른 폭스바겐의 EA189 엔진 제품 또한 이 시기에 수입돼 환경부의 배출가스 인증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당시에도 논란의 소프트웨어가 있었지만 국내 규제 문턱이 미국만큼 높지 않아 해당 소프트웨어가 작동시켜야 할 추가적인 배출가스 정화장치(LNT)가 없었다. 다시 말해 국내 배출 기준을 적법하게 충족한 만큼 해당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아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지금까지의 태도였다. 환경부와 검찰, 공정위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폭스바겐이 법리적 판단을 고수한 데는 그만큼 배출가스의 법규 충족에 자신이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의외의 암초를 만났다. 배출가스 인증 과정에서 제출해야 할 시험성적서 조작이 검찰에 의해 발견됐다. 이를 두고 폭스바겐은 오랜 기간 묵인돼 온 관행임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법률 위반 행위였던 만큼 환경부의 인증 취소에 앞서 자발적 판매 중단에 착수했다. 환경부의 소프트웨어 불법 조작은 법리로 맞설 수 있지만 인증 취소는 환경부의 고유 행정 권한이고, 재인증을 받아야 하는 폭스바겐으로선 칼자루를 손에 넣은 환경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일단 한발 뒤로 주춤하지만 쉽게 물러설 태세도 아니다. 국산 및 수입차의 배출가스 인증과정에서 서류 조작 자체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상용차의 경우 배출가스 측정 때 축을 임의로 변경하는 게 다반사이고, 국산차도 일부 기본 데이터를 자체 시험으로 평가, 기입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 같은 편법 인증은 시험 및 권한을 모두 가진 환경부 산하 기관 또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게 수입차 업계의 시각이다. 폭스바겐을 계기로 인증 때 편법 과정을 모두 조사하면 환경부와 산하 기관, 자동차기업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인증 취소를 바라보는 자동차업계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폭스바겐을 시작으로 모든 국내 완성차 및 수입차의 인증 서류 조작 여부를 밝혀내느냐, 아니면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임에 비춰 폭스바겐에 면죄부를 주느냐이다. 전자를 선택하면 환경부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후자를 선택하면 여론이 빗발칠 수밖에 없다.

일단 폭스바겐은 환경부가 서류 조작을 이유로 내린 인증 취소에 한발 물러섰다. 소프트웨어 장착에 따른 제품 문제가 아니라 서류 조작을 인정하고, 재인증을 통해 다시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의도다. 이 경우 환경부로서도 꺼내든 칼을 한번은 휘둘러 체면을 세운 형국이어서 재인증으로 해결책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 재인증 또한 길어지거나 폭스바겐 스스로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고 여기게 되면 국내 완성차는 물론 수입차 모두에 대한 인증 과정의 조사가 불가피해지게 된다. 이 경우 자동차 배출가스 시험에 관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셈이어서 완성차업계는 물론 환경부 산하기관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지 인증을 빌미로 수입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며 관련 공무원을 해당국으로 초청한 것 또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환경부의 선택에 국민적 시선이 몰려 있다. 검찰로 넘겼던 공을 다시 돌려 받은 지금, 환경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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