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남~양재IC 지하화 외면하는 서울시
지난 20일 오전 서울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1층 강당. 272석의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좌석 옆 통로까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도시설계학회가 주최한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비전과 전략’ 세미나를 듣기 위해 모인 전문가와 시민들이었다. 서울 서초구가 지난 3월 발주한 경부고속도로(공식 명칭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용역을 총괄한 도시설계학회 등 5개 관련 학회는 이날 경부고속도로 한남나들목(IC)에서 양재IC까지 6.4㎞ 구간 지하에 총 20차로의 3층 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구간의 상습 정체를 막아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한남~양재IC 구간은 2002년 관리 주체가 한국도로공사에서 서울시로 넘어갔다. 서울시가 건설·관리·유지 기능을 맡고 있는 시도(市道)여서 지하도로를 건설하려면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날 세미나에선 서울시 담당 국장이나 과장, 팀장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담당 주무관 한 명을 보내 내용을 들어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수도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 말단 주무관 한 명만 달랑 보낸 것이다.

서울시는 경부고속도로 일부 구간 지하화에 대한 공식 의견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워낙 큰 프로젝트여서 차기 시장에게 넘기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내 얘기하진 않지만 강북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 시장의 말처럼 한남~양재IC 구간 지하화는 중장기적으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다. “서울 강남·북 균형 개발이라는 원칙에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지금이라도 각계 전문가 및 시민들과 함께 이 사업이 필요한지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치밀한 분석과 토론을 거쳐 사업을 허가할지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관할 구청은 물론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나서 공론화를 하고 있는 마당에 “다음 시장에게 넘기겠다”며 무작정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