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형 브렉시트'가 일어난다면…
‘찬성 51.9%, 반대 48.1%.’ 지난달 23일 치러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투표 결과다. 예상과 달리 영국인들은 EU를 떠나기로 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밤을 새워 가며 개표 결과를 지켜본 뉴욕 월가는 “시장이 최악의 쇼크에 빠질 것”이라며 법석을 떨었다. 이틀간 시장은 요동쳤지만 우려한 ‘테일리스크’는 발생하지 않았다.

통상 수개월 걸리는 정권 교체는 잡음 없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잔류를 주장한 테리사 메이 전 내무장관이 신임 영국 총리에 올랐다. 그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일 뿐”이라며 개인의 소신과 공인(公人)의 처신을 구분했다. 약 400만명이 서명을 통해 요구한 재투표 요구를 단칼에 잘라내며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

브렉시트 결정 사태를 수습할 내각은 당초보다 2개월 빨리 구성됐다. 외신들은 “브렉시트부 장관을 신설하는 조직 개편과 함께 24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은 찬성과 반대파를 고루 기용하는 통합형으로 짜여졌다”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마지막 의회 연설은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의원들도 기립박수로 노고를 격려했다. 런던 시민들도 관저를 떠나는 캐머런 전 총리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냈다. 월가의 한 연기금 투자자는 “브렉시트를 걸고 불장난한 정치권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신속하고 차분하게 위기를 수습한 능력 역시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폭락할 것 같던 런던 부동산시장은 유동성 비율 규제 덕분에 잠잠해졌다. 펀드런으로 옮겨 붙지 않았다. 영국 중앙은행(BOE)도 필요 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하겠다며 불안을 잠재웠다. 투표 결과를 둘러싼 반발 시위나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우려와 달리 찬성파와 반대파 간 유혈 충돌도 없었다.

만약 브렉시트와 맞먹는 사회적 충격을 일으키는 대형 정치적 이벤트가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한 투자분석가는 “영국은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 전통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탄탄한 펀더멘털(기초 여건)을 보여줬다”며 “이는 보이지 않는 영국 경제의 자산”이라고 지적했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