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영국을 과소평가한…
브렉시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단정적이고도 치우친 것이었다. 보도만으로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이 아닌 지구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할 정도였다. 비판은 두 가지에 집중됐다. 하나는 영국이 소위 ‘고립주의’를 향해 가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이 투표 전후 며칠간 한국 언론을 도배질했다. 일부 언론은 영국인들이 투표 직후에야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며 후회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다른 하나는 소위 민주주의 실패론이었다. 그럴듯했다. 영국인들이 투표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을 투표에 부쳤고 결과적으로 오판했다는 것이다. 지력이 낮은 계층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분석도 홍수였다. 군중심리가 지배했으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기념비적 실패 사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브렉시트 투표는 큰 오류였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국가적 패착이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황당한 분석이 국내에서 쉽게 지배적 담론이 됐는지는 실로 미스터리다. 반자유주의는 경제민주화 입법 광풍이 말해주듯이 한국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브렉시트가 그것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증거는 빈약하다. 브렉시트는 오히려 유럽의 ‘탈시장’에 반대하고 ‘탈규제’를 요구하는 정통 자유주의 캠페인의 성격을 보여 왔다. 이민 문제가 브렉시트 촉발제라지만 런던의 외국출신 비율이 이미 63%요, 지난 10여년간 이민자 수가 550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국은 놀랍도록 개방적인 국가다.

한국 언론의 일방적 보도는 EU의 초국가성(super state)을 둘러싼 정치적·법철학적·경제적 논쟁들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 실패론은 더욱 그렇다. 한국 언론들은 유달리 브렉시트 유권자 성향 분석에 집착해 왔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상당수가 저학력·농촌지역·노인층이라는 분석은 브렉시트 진영은 고루하며, 반외국인 성향이며, 무식하다는 비약적 논리로 자동 번역됐다.

맙소사! 이런 분석은 맞는 것일까. 런던 시민의 반대가 많았지만 런던은 말 그대로 이방인들의 도시다. 그리고 고학력 지식인들이 쉽게 사회주의에 노출된다는 것은 강남좌파, 샴페인좌파라는 단어에도 농축돼 있지 않나. 더구나 젊은이들은 어디서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해서 종종 잘못된 정치적 선택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의 투표 성향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언론의 일방적 보도가 수많은 후속적인 오류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영국이 재투표를 하거나 후회 속에서 브렉시트를 취소할 것이라고 한국인들은 서둘러 결론 내리고 말았다. 근거도 없는 영국 때리기(bashing)가 이어졌다. 한국 주가가 1500까지 떨어지고, 환율은 달러당 1500원까지 치솟으며, 36조원의 파운드 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어이없는 전망도 뒤를 이었다. 진출 기업들도 탈영국의 압력을 받았다. 이런 엉터리 전망은 보상받을 길조차 없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영국은 즉각적으로 법인세 인하를 밝혔고, 파운드화 약세는 영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무역흑자의 여지를 확대해줄 참이다. 너무 오른 부동산은 숨을 고르고 있고, 테리사 메이 총리는 차분하게 정세를 조율하고 있다. 한국의 보도대로라면 누구라도 영국에서 뛰쳐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바로 어제 일본의 손정의는 무려 35조원을 영국 반도체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도 런던 외곽을 훑고 있었다.

다급해진 쪽은 오히려 EU다. 최고 1%를 물리겠다는 금융거래세는 이미 물 건너갔고 영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EU 분열 가능성만 높아졌다. EU 집행부는 또 세계의 감시를 받게 됐다. 영국은 1999년 유로화 도입을 거부하는 역사적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이 런던 금융시장을 폭발하도록 만들었고 6년 전에 뉴욕을 따돌렸다. 지금은 세계 유로화 거래조차 런던이 지배하고 있다. 감성에 휘둘려 현실 인식에 실패하는 것이 브렉시트에서만도 아니다. 광우병도 그랬고 지금의 ‘사드공포’도 그렇다. 레밍이 되자는 것인가.

정규재 주필(런던=연착)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