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미사일 방어 기술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9월8일, 영국 런던에 정체불명의 ‘소형 비행기’가 내리꽂혔다.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비행기가 아니라 유도장치를 단 최초의 탄도미사일 V2였다. 나치 독일은 이듬해 3월까지 이 가공할 신무기를 유럽에 3000발 이상 쏟아부었다. 사상자가 1만여명에 달했다. 사람들은 이를 ‘악마의 사자’라고 불렀다.

V2를 개발한 주인공은 독일 로켓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과 그의 재능을 간파한 독일군 장교 발터 도른베르거였다. 종전 후 미국과 소련은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숨가쁜 첩보전을 벌였다. 승자는 미국이었다. 폰 브라운은 훗날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올리는 등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일등공신이 됐다. 유도폭탄 기술자가 우주개발 주역이 됐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탄도미사일은 미·소 냉전시대에 5000㎞ 이상의 사거리를 가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발전했다. 양측은 이를 요격할 수단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미 육군은 1956년에 웨스턴 일렉트릭, 벨전화연구소와 손잡고 요격미사일 기술 개발에 나섰다. 1980년대에는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략방어구상(SDI)을 발표했다. ICBM을 대기권 바깥의 우주 공간에서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냉전 종식으로 주춤하던 미사일 방어 경쟁은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다시 불붙었다.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미군이 패트리엇으로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로 생중계된 이 장면으로 패트리엇은 걸프전의 스타가 됐다.

탄도미사일 방어 작전은 크게 대기권과 외기권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대기권 탄도탄은 사거리가 짧아 대응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패트리엇 등으로 대응한다. 외기권 탄도탄은 시간 여유가 좀 더 있어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로 막는다. ‘사드’로 불리는 고(高)고도 지역방어 미사일(THAAD)은 대기권이나 외기권 다 가능하지만 주로 40~150㎞의 고고도에서 요격한다. 사드가 실패하면 패트리엇 미사일이 10~40㎞의 저고도에서 처리한다.

단점도 있다. 미국의 패트리엇과 러시아의 트리움프는 마하 10 이상의 유도탄엔 손을 쓸 수 없다. 그 이하라도 명중률은 100%에 못 미친다. 고속은 속수무책이고 저속도 실패할 수 있는데 비용은 막대하다.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기 경쟁에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늘 있다. 미사일 잡는 미사일 말고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