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퀄컴이 만났다. 오는 20일 전원회의에서 공정위가 이기면 퀄컴은 연간 총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특허 관련 수익이 대폭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잇따를 가능성이 커 사업 자체가 존립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최근 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담합 등 대형 사건에서 잇따라 ‘헛발질’을 한 공정위의 신뢰도가 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다. 퀄컴과 공정위, 양측 모두 명운을 건 승부인 셈이다.
[공정위-퀄컴 대결 20일 결판] '특허 남용 시정명령'에 떠는 퀄컴…'무혐의' 땐 공정위 타격
○“특허권 남용으로 年 9조 수입”

퀄컴은 1996년 1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통신시장에서 상용화했다. CDMA가 한국 중국 인도 등에서 적용되면서 퀄컴의 원천기술은 통신시장에서 누구나 쓸 수밖에 없는 ‘표준특허’로 인정을 받았다. 퀄컴은 표준특허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통신칩 제조권’ ‘통신칩 판매권’ ‘통신칩 사용권’으로 구분하고 있다. 각 권한을 고객사에 부여하고 고객사로부터 제품 가격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다.

퀄컴은 인텔 등 통신칩 업체엔 사용권을 주지 않고 제조권과 판매권만 준다. 사용권은 스마트폰 업체에만 준다. 사용권을 통신칩 업체에 주면 스마트폰 가격을 기준으로 사용권 로열티를 못 받고 비교적 저렴한 통신칩 기준으로 로열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퀄컴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값비싼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고객사에 사용권을 부여하고 제품 가격의 5%를 로열티로 가져가는 방법 등으로 작년 79억달러(약 9조2200억원) 상당의 특허 관련 매출을 올렸다.

○“표준특허준칙에 위배”

조사를 맡아온 공정위 정보통신기술(ICT)전담팀은 이 같은 퀄컴의 특허 정책이 ‘표준특허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프랜드(FRAND) 준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퀄컴이 프랜드 준칙을 어기면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이어진다.

ICT전담팀은 조사를 통해 퀄컴이 표준특허에 다른 특허를 끼워팔고 갑의 위치를 이용해 고객사 특허를 무상으로 사용한 행위 등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 끼워팔기 등의 혐의는 중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평가된다.

퀄컴은 지난해 11월 심사보고서를 받자마자 반발했다. 퀄컴은 최근 공정위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퀄컴의 특허권 부여 관행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이동통신업계의 성장을 촉진한 합법적이고 경쟁친화적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시정명령 시 영업 중대한 타격

전원회의에서 혐의가 입증되면 퀄컴은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검찰고발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퀄컴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시정명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징금은 이미 한국과 중국에서 한 차례씩 받은 적이 있다. 이와 달리 시정명령은 퀄컴의 영업전략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인텔 등에도 표준특허 사용권을 부여하라는 시정명령이 떨어지면 인텔 칩을 쓰는 스마트폰 제조사는 굳이 퀄컴에 제품 가격 기준으로 로열티 5%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진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그만큼 로열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한국 공정위를 따라 중국 대만 일본 등의 경쟁당국도 같은 제재를 퀄컴에 내릴 가능성이 크다.

‘무혐의’나 ‘심의절차 종료’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 공정위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추락할 수밖에 없다. 4년간 공을 들인 6개 은행의 CD 금리담합 사건이 무혐의로 결정난 데 이어 퀄컴 사건마저 ‘헛발질’을 한 것으로 판명되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국 공정위는 무리한 조사를 한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어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