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예금을 받으면 일정 비율만큼을 지급준비금으로 한국은행에 예치해야하는 것과 관련, 요구불예금 등의 지급준비율을 낮춰달라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에다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요구불예금 잔액이 계속 늘고 있고, 이로 인해 은행들이 한은에 예치해야 하는 무수익 자산인 지급준비금도 많아져서다.
한은-시중은행, 수개월째 '지준율 신경전'
한은은 그러나 “지급준비율은 통화정책 수단으로 은행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은은 요구불예금 지급준비율을 2006년 11월 5%에서 7%로 올린 뒤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보통예금과 수시입출금식예금 등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한 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은 160조원을 넘었다. 최근 1년 사이 17조원가량 늘었다.

초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자주 요동치자 금융소비자들이 금리가 낮더라도 원금손실 가능성이 없는 은행에 단기성 자금을 맡기고 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은행권에서 지급준비율 인하 요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장들은 지난 4월 말 열린 이주열 한은 총재와의 간담회에서 지급준비율 인하를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은행장들은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로 충당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저금리로 수익성은 악화하는데 지급준비금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만 한국은행에 5조8000억원의 지급준비금이 예치됐다. 전체 순이익(3조5000억원)의 1.6배에 달한다.

은행들은 캐나다와 스위스 중앙은행이 강제적인 지급준비금 제도를 폐지했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해 은행의 유동성과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저성장, 저금리가 고착화하면서 예금회전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어 지급준비율 인하를 본격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지급준비율이 내리면 기업·개인 대출 등에 사용할 자금 여력이 늘어난다”며 “해외 중앙은행처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한은은 2008년 모든 금융회사의 지급준비금에 연 이자율 2.3%를 적용해 5000억원 규모의 이자를 지급한 전례가 있다.

한은은 지급준비율 인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 등이 경기 부양을 위해 지급준비율 인하 카드를 활용하지만 한국과는 통화정책 방향이 다르다고 밝혔다.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 지급 역시 해외 사례가 아니라 기준금리 조정 등 다양한 통화정책의 틀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권 수익성 제고나 산업·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유동성 지원 등을 지급준비율 조정과 연관시키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