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고유가 끌어내린 셰일오일…국제 원유시장 '촉각'
“싱가포르 선적 유조선 잠베시호가 7월30일 원유를 싣고 갤버스턴 항을 출발, 목적지 한국을 향해 돛을 올렸다. 이 항해는 미국 에너지산업의 중대한 전환점을 상징한다. 유조선에 선적된 원유 40만배럴은 40년 만에 미국 본토 원유가 처음 제한 없이 수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유조선의 출항은 미국이 석유 수출국으로 20세기 전반기에 세계적으로 행사했던 막강한 영향력을 다시 잡는 무대의 막을 올리는 것이다.”

2014년 10월7일자 뉴욕타임스 특집기사 ‘미국, 석유 유통의 전환점에 서다’란 제목의 기사 내용이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기록하고 불과 3개월 후 시점이다. 소위 셰일혁명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셰일혁명이란 대량으로 생산된 셰일오일이 세계 석유시장에 준 충격을 말한다. 셰일오일은 지하 1000m 이상 깊이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함유하고 있는 셰일암(頁岩·혈암)을 ‘수압파쇄공법’이란 신기술로 분쇄해 채굴한다. 복잡한 공법과 지하수 사용으로 인한 환경 오염 처리를 위해 채굴 비용이 높다는 게 단점이다.

셰일혁명의 진원지는 미국 텍사스주다. 텍사스 출신 가스채굴업자인 조지 미첼이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수압파쇄공법 덕분에 텍사스 황야에는 셰일석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갤버스턴은 텍사스의 ‘석유 수도’라 불리는 휴스턴을 배후지로 둔 무역항이다.

[한경 BIZ School] 고유가 끌어내린 셰일오일…국제 원유시장 '촉각'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월11일, 국제 유가는 배럴당 26달러를 기록했다. 2003년 5월 이후 근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가가 급락한 이유는 중국과 유럽 등 주요 소비국의 경기부진 요인이 크다. 또 다른 이유는 ‘셰일혁명’ 때문이다. 위 기사는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석유 수입국에서 석유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셰일혁명 이전 오랫동안 기존 산유국들이 과점의 이익을 누리던 원유시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2013년 미 에너지국(EIA) 추정에 따르면 세계 셰일오일 매장량은 약 3450억배럴에 달한다. 러시아가 750억배럴로 세계 1위며, 미국(580억배럴)과 중국(320억배럴)이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말 에너지시장에서는 이전에는 보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을 기록함에 따라 일부 산유국을 중심으로 산유량을 동결하자는 말이 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원유 수입 감소로 인해 복지정책을 축소하면서도 말이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중동의 봄’ 시절, 왕조 유지를 위해 확대한 복지정책이다. 이의 축소는 왕정체제에 대한 위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우디가 이런 대응을 하는 이유는 셰일혁명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유가를 낮게 유지해 생산비용이 높은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려는 전략이다. 소위 ‘치킨게임’이다.

이런 정책은 일견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유가 하락으로 상당수 미국 셰일업체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셰일오일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면서 생산비 원가가 낮아질 수도 있다. 중동 국가들도 궁극적으로는 감산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유시장은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 감소로 공급을 조절해야 가격이 간신히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산유국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현재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져 있는 베네수엘라 등의 산유국들이 감산에 적극적인 이유다.

6월 현재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4개월여 동안 100% 가까이 급등했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다. 셰일오일로 인해 원유시장은 여전히 공급 과잉이라고 믿고 있다. 원자재시장 분석 전문기관인 글로벌마켓포커스가 주요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유수 기관들 역시 내년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유시장처럼 지정학적 요인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원자재도 드물다.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였던 폴 콜리어는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들의 내전 발발 가능성이 얼마인지를 계산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지하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내전 위험은 0.5%인 반면 지하자원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는 23%에 달했다. 배럴당 50달러를 소폭 밑돌고 있는 유가는 이들 산유국이 시장 점유율 정책을 끝내고 감산에 돌입하면 그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전이라도 발발한다면 말이다.

“그때는 최고의 시절이었다. 그때는 최악의 시절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유명한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서문이다. 1859년 출간된 이 소설에는 변화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단두대 끝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숨겨져 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직전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은 국제 유가는 지난 2월 26달러까지 떨어지다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년 뒤 국제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저(低)유가 시절을 즐기기 전에 최악의 시절에 대비해야 한다.

문용주 글로벌마켓포커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