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형평성 잃은 가전 환급금
정부는 에너지효율 1등급 가전제품을 구매하면 최대 20만원까지 돌려주겠다고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소비자들과 가전업계 모두 환호하고 있다. 정부는 “내수도 진작시키고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도 높이니 1석2조”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환급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기획재정부는 정책 발표 당시 한국전력의 ‘에너지 고(高)효율기기 지원사업’에서 충당하겠다고 했다. 해당 사업은 한전의 변압기를 고효율기기로 바꾸거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백열전등을 LED(발광다이오드)로 교체할 때 지원하는 것이다. 한전 측은 “고효율기기 지원 사업은 한전 자체 예산과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충당된다”며 “올해 책정된 1084억원은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 정부 정책을 시행하려면 재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예산은 정해진 만큼 대부분의 재원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충당할 전망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송전시설 주변 보상 등을 목표로 전기요금 납부자들에게 요금의 3.7%를 추가로 걷어 조성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만 1조6582억원이 남아 빼내 쓸 수 있는 돈도 많다. 한전이 국민들에게 십시일반 모은 기금을 정부가 나눠주고 있는 셈이다. “재원이 소진될 때까지 지원하겠다”던 정부는 구체적인 재원 규모는 밝히지 않고 약속한 9월까지는 해당 제품에 모두 환급금을 지급할 태세다.

정부가 환급금을 주겠다는 가전제품에는 판매가가 800만원이 넘는 냉장고 등 프리미엄 가전제품도 포함한다. 반면 전기요금과 전력산업기반기금 청구서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도 어김없이 날아든다. 가전과 관계없는 기업들이 내는 돈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돈을 모아 정부는 수백만원짜리 가전을 살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겠다고 한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지난해 1조3622억원, 2014년엔 1조1122억원 남았다. 지난 4월 감사원 감사에서는 한전이 해당 기금 2160억원을 허술하게 집행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정부는 남는 돈이라고 쓸 궁리만 하기보단 기금 부과요율을 인하해 더 많은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노경목 산업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