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일선 금융회사 자산관리사(PB·프라이빗뱅커)들은 KB자산운용 펀드를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밥’이나 ‘김치’에 비유하곤 한다. 어떤 성향의 고객이 찾아오든지 무난하게 추천할 수 있는 상품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수익률도 밥이나 김치처럼 한결같다. 단기 수익률 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는 일은 드물지만 상위권에선 좀처럼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KB운용에 ‘공룡 펀드’들이 많은 이유

KB자산운용에 1조원이 넘는 덩치가 큰 상품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상당수 투자자가 포트폴리오에 10~20%씩이나마 KB자산운용의 상품을 담다 보니 펀드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설정액이 1조6595억원에 달하는 ‘KB밸류포커스’펀드는 국민 펀드 중 하나로 꼽힌다.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싼 종목에 긴 호흡으로 투자하는 상품으로 매년 평균 10% 이상을 꼬박꼬박 벌어주고 있어서다.

설정액 1조7987억원으로 퇴직연금펀드 중 가장 덩치가 큰 ‘KB퇴직연금배당40’펀드도 PB들의 추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상품이다. 전체 자산 중 40%는 주식에, 나머지는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로 안정성과 수익성의 황금비율을 맞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8년 국민투자자문으로 설립된 KB자산운용은 28년이 된 회사다. 2004년부터 현재의 사명을 쓰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설정액 면에서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다. 스테디셀러 상품들이 동반 활약한 덕에 2014년에 3조원, 지난해에 12조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올해도 KB 브랜드 펀드 인기는 여전하다. 5월 말까지 3조5000억원 안팎의 자금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관리자산 50조원의 벽을 넘어섰다. 예금과 적금을 대체할 수 있는 중저위험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채권혼합형 펀드 수요가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굴리는 돈이 늘어나면서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에 창사 이래 가장 많은 14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새 성장동력은 ETF와 자산배분 상품

최근 KB자산운용은 수익 파이프라인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 펀드가 잘 팔리는 시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장담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KB자산운용은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인덱스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를 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매니저들이 직접 종목을 선별하는 주식형 펀드들의 수익률이 매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인덱스펀드와 ETF와 같은 지수 연계형 패시브 상품은 수수료가 싸고 단기 시장 대응이 용이하다. 박스권 장세가 길어질수록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주식과 채권 원자재 가격 등을 추종하는 다양한 ETF들을 활용, 자산배분 상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출시한 ‘KB글로벌주식솔루션’펀드가 첫 작품이다. 20개국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통해 전 세계 증시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KB자산운용은 ETF 연계 펀드를 늘리는 한편 개인의 투자성향을 반영한 맞춤형 자산배분 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이희권 KB자산운용 사장은 “5년 후, 10년 후에도 성장을 지속하려면 패시브 및 자산배분 상품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 3년 전부터 전산 인프라와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하고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신설된 ETF전담 조직(멀티솔루션본부)을 통해 국내에 국한돼 있는 시장을 해외로 확장하는 것도 미래 성장 전략 중 하나다. KB자산운용은 지난 5월부터 일본 아이자와증권을 통해 일본 투자자들에게 ‘KB한일롱숏’펀드를 팔고 있다. 투자자들의 저변을 일본 등 주변국으로 확대하는 전략에 시동이 걸린 셈이다. 이 사장은 “일본 증권사와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유진투자증권과 손잡고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며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해외 판매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룹 차원의 협업도 강화할 방침이다. KB금융그룹이 보유한 고객들의 빅데이터를 새로운 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설명이다.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로 취약점으로 지목됐던 증권사 판매채널이 탄탄해진 것도 호재로 꼽힌다. 계열 증권사가 버팀목 역할을 해 주면 실험적인 상품을 공격적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게 KB자산운용의 설명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