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넘어정치경제사를 공부하다 보면 항상 궁금한 것이 인도(무굴제국) 같은 큰 나라가 어떻게 1/13 크기에도 못 미치는 영국에게 지배를 받았느냐 이다. 인구로 따져도 18세기말 무굴제국의 인구를 3억으로 가정했을 때 1천만이 조금 넘던 영국의 지배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소한 내 개인의 학창시절에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그러면서 부연설명도 없이 서구의 착취문화로 곧바로 귀결된다. 참 이상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시작부터 막지 못한 피지배자들은 얼마나 바보였을까? 역사는 망원경이 아닌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할 때가 있다.무굴제국은 오늘날의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방글라데시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와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였지만 사실상 지역별로 왕과 군벌, 독립된 행정조직이 있는 봉건체제였다. 제국의 명맥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도 무굴제국은 끊임없는 내전과 각지의 반란을 제압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했고 모양세만 제국 이었을 뿐 중앙왕조가 완벽한 통치시스템을 구축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내전과 반란을 거듭하다보면 지역의 영주와 왕들은 강한 연대세력을 찾기 마련이고, 이 시기에 맞춰 유럽의 인도 진출이 본격화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쉽게 말해 유럽의 동인도회사들은 인도의 내전에 적극 참여했고, 인도의 군벌과 왕들 역시 경쟁적으로 유럽세력과 연합했다.이러한 정세에 경제적 시각을 대입한다면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다른 유럽 상사(商社)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세력과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군벌들과 왕들 또한 통상무역을 하고 있는 유럽과 손을 잡아야만 자본축적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세력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무굴제국 최대범위 : 사실상 여러 왕조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봉건체제였다.잦은 내전의 결과는 마침내 1739년 페르시아-압샤르 왕조의 침공을 받은 후부터 사실상 제국의 위상은 사라지고 1785~1858년까지 “공식적으로” 동인도회사의 지배시기가 온다. 통치력을 상실한 무굴제국을 지켜봤던 지방의 실력자들은 동인도회사의 통치에 딱히 반감을 갖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무굴제국의 붕괴는 서구의 침탈과는 무관한 지역정세의 문제가 더 컸다.민간기업의 효율성과 자유무역의 역동성, 카스트제도마저 흔들다인도 지배의 시작은 영국왕실이 아닌 동인도회사였다. 이 시기 영국의 인도 “관리”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보기는 매우 무리가 따르고, 무엇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도덕적인 평가는 더더욱 힘들다. 국가이익과 개인의 이익 더 나아가 집단의 이익여부가 타인에게 도덕성까지 검증받을 이유가 없었던 게 역사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동인도회사가 인도에 끼친 또 다른 영향은 다름 아닌 카스트제도의 약화에 있다. 통상무역을 목적으로 다른 문명권에 진출한 만큼 영국(인)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신분적 한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영국입장에서도 “우리가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무너뜨려 저들을 구해야 한다”와 같은 신파극을 연출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결론적으로 봐도 신분상승의 기회로 동인도회사와 노골적으로 연대하고 싶은 개인과 신흥세력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 게 그 결과다. ▲유니언잭을 통상무역의 키워드로 묘사했다.결론적으로 영국은 17세기부터 동방무역의 자율권을 민간에게 허용했고, 동인도회사의 경영능력과 효율성이 가져온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삼아 아프리카, 북미, 중앙아시아를 아울러 동아시아까지 전 세계로 진출한 발판이 됐으며, 이 과정에서 관료적(Bureaucratic)해석과 정치적 규제는 최대한 배제됐다.그 결과 유럽에서 딱히 부국도 아니었던 영국이 3세기 가까이 패권을 쥔 원동력이 되었고, 더더욱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은 동인도회사의 중앙아시아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본국인 영국에서는 1차와 2차에 걸친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종합하면 눈에 띄는 것은 민간의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규제를 최소화 하는 당시 유럽의 분위기다. 유럽에는 여전히 왕가가 존재하는 입헌군주제의 국가가 많다. 이번 사례로든 영국과 네덜란드야 말로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저들은 왜 여전히 입헌군주제를 유지할까?”경직된 중앙권력을 움켜쥐고 상업의 중요성과 상무정신마저 천박한 가치로 여겼던 “자격미달”의 왕조인 조선왕조가 붕괴된 지 100년도 넘었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국가적 가치로 내걸었지만 오늘날의 실상은 매우 달라 보인다.만약 오늘날 한국의 관료사회와 여의도 정치판이 대한민국에서 18세기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버금가는 기업집단이 존재하는 걸 과연 그냥 보고 넘어갈까? 질문을 바꿔야겠다. “저들은 왜 여전히 입헌군주제가 유지될까?”이다.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Class System이 인정되는 공인된 계급사회지만 그 계급이 헌법적 규제로부터의 자유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리적인 우월감이 은근히 존재할 뿐이다.이러한 영국의 사회분위기에서 400년 전 영국으로 시계태엽을 돌려보자. 지금보다 더 엄격한 신분사회 속에서 상위계급에 있는 인물들 이외의 전문가 집단을 키운 세력이 다름 아닌 왕가와 세습귀족이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봉건적 계급구조가 아닌 순수한 이윤창출이라는 합목적 욕망이 건전하게 인정된 결과이다.비대해질 데로 비대해진 기업규제와 민간에게 잘못 뇌리에 박힌 反기업정서, 여전히 사농공상의 신분구조로 사회를 해석-유지하고 싶어 하는 경직된 관료시스템에 종사하는 행위자들이야말로 대영제국의 팽창과정에서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져다준 역동성과 긍정적인 결과물들을 얼마나 이해할까 반문해볼 시기이다.임종화 경기대 무역학과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일리뉴스팀기자 daily_sp@wowtv.co.kr
한국경제TV 핫뉴스
ㆍ정용화 검찰 소환 조사…`유재석 이용` 주식 부당거래 연예인 또 있다
ㆍ‘닥터스’ 김래원, 무심한 듯 멋진 남자…심쿵유발자 등극
ㆍ"박유천, 빚 갚아준다며 성관계 시도" 피해자 진술 들어보니…
ㆍ왕주현 구속에 긴박해진 국민의당…안철수, 네 번째 대국민사과
ㆍ`PD수첩`, 박유천 성폭행 사건 집중조명..사건의 쟁점은
ⓒ 한국경제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