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퇴직연금, 중기 도입 확산돼야
퇴직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125조원 규모로 지난 10여년간 급성장했다. 전체 가입자는 590만명에 이르고, 도입 사업장은 30만개가 넘었다. 300명 이상 대기업은 84%가 도입해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한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17%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도입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30명 미만 사업장 10개 중 6개는 과거의 퇴직금 제도에 머물러 있고, 10명 미만 영세사업장의 도입률은 12.5% 불과하다. 중소기업 근로자 다수가 여전히 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세 중소기업은 적립금 운용 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는 DC(확정기여형) 또는 기업형 IRP 제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10명 미만 기업의 74%가 DC 또는 기업형 IRP를 채택하고 있다. 그간 DC 제도를 채택한 기업의 근로자 대부분은 최저이율의 예금이나 보험 상품을 선택해 왔고, 연 5~6%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낭만적인 시절은 다 지난 얘기가 됐다. 현재의 1% 후반대 금리로는 물가상승률도 쫓아가기 버겁다.

DC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퇴직연금 모범 국가인 미국, 호주 등의 DC 제도는 근로자 노후 준비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자본시장 안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근로자 스스로 적립금을 운용해야 하는 DC 제도는 바람직한 연금 자산관리 문화가 정착돼야 노후 대비로 이어질 수 있다. 저금리 시대의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해서는 더욱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실적배당형 연금펀드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국내 DC 펀드 자금의 86%는 국내 자산에만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 다양한 자산과 지역에 분산 투자해 투자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안정화할 수 있는 글로벌 상품이 보급돼야 한다. 둘째, 근로자 생애주기에 적합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전 생애에 걸쳐 제공하는 타깃데이트 펀드(TDF)가 활성화돼야 한다. 근로자 스스로 연령대에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고, 적합한 투자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TDF처럼 연금에 특화한 초장기 투자 상품이 적극 소개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과 같이 실적배당형 투자를 권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물론 그 대상이 되는 적격상품은 장기 연금투자에 확신을 줄 수 있는 검증된 상품이어야 할 것이다.

정병욱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