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미텔슈탄트'의 힘
지난해 수출 대국은 중국 미국 독일 일본 순이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2015년 중국은 2조2805억달러, 미국은 1조5046억달러, 독일은 1조3289억달러, 일본은 6248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하지만 인구를 감안하면 단연 두각을 나타낸 국가는 독일이다. 중국 인구는 13억명, 미국은 3억명, 일본은 1억2000만명이 넘는 데 비해 독일은 8000만명대다. 독일의 1인당 수출액은 중국의 9.7배, 미국의 3.5배, 일본의 3.3배에 이른다.

독일 수출은 누가 주도하는가. ‘포천 500대 기업’을 보면 세계적인 대기업(2015년 기준)은 미국이 128개로 가장 많고 중국 98개, 일본 54개, 프랑스 31개, 영국 29개인 반면 독일은 28개에 그쳤다. 독일에도 지멘스 다임러 BMW 바스프 등 글로벌 대기업이 있지만 그 숫자는 적다.

코끼리 노는 곳에서 놀면 안 돼

독일 경제의 기관차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 중견·중소기업)다. 지난달 말 독일 만하임대에서 만난 이 분야 연구의 권위자 빈프리드 베버 교수(경영학부)는 “미텔슈탄트가 독일 경제와 수출을 이끄는 주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여기엔 1307개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과 연 매출 5000만유로 이상의 가족기업 4400개, 34만개의 중소기업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슈퍼스타’로 변신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이 왜 강한가. 베버 교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틈새시장 개척 △지속가능경영 △사람에 대한 투자 등을 핵심 자산이자 전략으로 꼽았다. “중소기업은 코끼리가 노는 곳에서 놀면 안 된다”는 말로 틈새시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경첩 등 도어 관련 제품만 만든다든지, 캐스터(작은 바퀴)에 특화해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방식이다.

지속가능경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개발하고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플레이모빌’에서 볼 수 있다. 수십억 개가 팔린 장난감 플레이모빌은 1974년 게오브라의 한스 벡이라는 디자이너가 개발했다. 이 사람을 위해 회사 측은 무려 10년 동안 투자하고 기다렸다.

기능인 존중이 독일의 저력

베버 교수는 독일 특유의 문화도 미텔슈탄트 성공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능인력에 대한 높은 평판, 현장 중심의 ‘이중교육시스템’과 ‘평생교육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교했을 때 독일의 대학 졸업자 비율이 가장 낮다.

물론 독일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 나라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국민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인들은 “이공계 대학을 나와도 기계를 설계하거나 작동할 줄 모른다”며 “대학 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공계 박사들이 실질적인 현장 기술 개발보다 논문에만 매달린다”는 것도 불만 사항이다. 지금 몇몇 산업의 경쟁력에 금이 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술자와 기능인력 존중이 독일 경제의 힘”이라는 베버 교수의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그는 미텔슈탄트 전문가이면서 한국 기업을 깊이 연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