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마케팅은 고객 마음 읽는 것"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사장(64·사진)은 젊은 시절 ‘자동차 마니아’였다. 한진건설 유럽주재원(1978~1986년) 시절엔 발품을 팔아 좋은 중고차를 발굴하고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하기도 했다. 국내외 자동차 전문지를 몇 권씩 구독하기도 했다. 차 이름만 대면 최고 속도와 연비 등 각종 스펙을 줄줄이 꿰는 수준이었다.

1986년 귀국 후 그는 한진건설 볼보사업부를 맡았다. 회사가 막 시작하려던 수입차사업을 자동차 전문가인 그에게 맡긴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오히려 자동차 전문지식에 대한 관심을 크게 줄였다. 대신 소비자의 마음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박 사장은 “자동차를 잘 안다고 자신하다 보니 ‘이런 차는 이런 옵션을 붙이면 좋겠다’ ‘이 차는 서스펜션을 개량해야겠다’ 등 차값 올라가는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그는 자동차에 대한 과도한 지식이 최고경영자(CEO)로서는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경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자동차 회사 사장은 자동차 자체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차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소비자 마음 먼저 얻어라”

[비즈&라이프]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마케팅은 고객 마음 읽는 것"
박 사장은 ‘마케팅의 귀재’로 통한다. 한진건설에서 볼보 수입을 맡았을 때(1989~1994년)는 볼보를 당시 업계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2005년 폭스바겐코리아 법인 설립 당시 초대 사장으로 취임해 2013년까지 일할 때는 폭스바겐을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고급차들과 어깨를 겨루는 브랜드로 키워냈다.

박 사장은 마케팅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마케팅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내가 아무리 좋다고 판단한 상품도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인지 수십 번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르노삼성으로 옮긴 건 2013년 9월이다. 그해 여름 어느 식사 자리에서 프랑수아 프로보 당시 르노삼성 사장이 “영업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하자 의향을 보였다. 프로보 사장은 그를 즉시 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적 당시 박 부사장은 61세, 프로보 사장(1968년생)은 45세였다. 나이가 열여섯 살이나 적은 ‘보스’를 모시게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자리를 옮겼다. 당시 르노삼성은 주력 모델인 SM5의 부진으로 2010년 15만대가 넘었던 내수 판매가 2012년에는 5만9926대까지 떨어졌다.

박 사장은 고전하던 회사로 옮긴 이유를 묻자 “제가 철이 좀 없다”며 웃었다. 그는 “폭스바겐에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했지만 은퇴하기엔 아직 젊다고 생각했다”며 “르노삼성의 영업 조직을 어떻게든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서 별 고민 없이 옮겼다”고 말했다.

직원들 기살리기에 주력

르노삼성으로 이직한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임직원의 자신감 회복’이었다. 본업인 영업본부부터 자신감 불어넣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박 사장은 “분위기가 처져 있으니 다들 자기 것만 들여다보고, 그러다 보니 장점보다는 단점만 보이면서 더 자신감을 잃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내수 판매 목표로 8만대를 내걸었다. 2013년(6만27대)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회사 안팎에서 의구심이 제기됐다.

첫 프로젝트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QM3였다. 당시 영업부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차량에 대한 부담에 연간 판매목표를 5000대로 잡았다. 박 사장은 그러나 QM3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비 좋은 차’ ‘수입차이면서도 저렴’ ‘전국 500개 르노삼성 네트워크에서 AS 가능’ 등 세 가지 키워드를 집중적으로 알렸다.

QM3는 2014년 1만8191대가 팔리며 ‘대박’을 터뜨렸다. ‘QM3가 국내 소형 SUV 시장을 제대로 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 덕분에 르노삼성 전체 판매량도 8만3대로 연간 판매목표를 달성해 냈다. 직원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년 연속 목표 달성

회사 분위기가 제대로 바뀌려면 한 해 성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은 르노삼성에 더 위기였다. 2014년에는 신차 QM3가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변변한 신차도 없었다.

박 사장은 다시 판매목표로 8만대를 내걸었다. 신차가 없는 상황에서 짜낸 아이디어 중 하나가 전시장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이었다. 대규모 언론 공개 행사를 열고 르노삼성 알리기에 나섰다. “어떻게든 르노삼성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해 직원들이 ‘회사가 달라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도록 해야 했다”고 박 사장은 설명했다.

‘1점주 1전시장’이 기본이었던 영업망 체제도 1명의 대리점주(개인 또는 법인)가 여러 개의 전시장을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해 갔다. 또 각 대리점이 AS센터를 함께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소규모 대리점이 AS센터를 갖추고 전시장을 늘리자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졌다. 기본적인 수익을 올리자 영업이 더 활성화됐다.

그는 “내년에는 SM6와 QM6 등 신차가 쏟아지니까 올해만 버티자”고 영업사원들을 끝없이 독려했다. 2015년에도 8만17대를 판매하며 목표를 달성했다. 자동차 회사의 핵심 지표는 매출·영업이익 같은 재무 성적보다는 판매량이다. 판매가 늘어나자 영업본부뿐 아니라 연구소와 공장 등 전 조직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올해 5월까지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는 3만6139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5% 늘었다. 수출 포함 전체 판매량(10만194대)도 4.3% 증가했다.

르노삼성의 첫 한국인 CEO

르노삼성의 모기업인 르노는 지난 4월 르노삼성의 첫 한국인 CEO로 박 사장을 선임했다. 2000년 르노삼성 설립 이후 16년 만이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씩은 부산공장과 기흥연구소에 가서 현장 사람들을 만난다. 서울 사무소에선 수시로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의 얘기를 듣는다.

박 사장은 “현장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순 없어도 어떤 걸 원하는지는 정확히 알아야 하고, 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직원들이 알아줘야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들이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회사를 내가 꼭 다녀야 하나’라며 출근하는 직원보다 ‘우리 회사는 나를 알아준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많아야 회사가 살아난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CEO 혼자 아무리 빛나 보이려 해도 결국은 반딧불밖에 안 된다. 직원들이 마음을 모아줘야 CEO도 빛난다”는 설명이다.

르노삼성은 ‘임직원 기 살리기’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추첨을 통해 임직원 가족을 부산공장으로 초청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부산공장 투어’를 개최하고 있다. 이달 초 열린 부산국제모터쇼에도 임직원 가족을 초대했고 르노삼성 전시관에는 직원들이 직접 자신이 설계하고 만든 차량을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외국 기업을 대주주로 둔 한국 기업의 CEO로서 박 사장은 “앞으로 외국 기업과 일할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질 텐데 외국인을 대할 때 투명성과 당당함을 갖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기업과의 비즈니스 관계에선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와 동시에 한국인에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훌륭한 기업을 배출한 저력이 있다는 당당함까지 갖춰야 외국기업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동훈 대표 프로필

△1952년 서울 출생 △1971년 서울 중앙고 졸업 △1976년 인하대 건축학과 졸업 △1978년 한진건설 입사 △1989년 한진건설 볼보사업부 부장 △1994년 한진건설 기획실장 △1997년 데코 전망좋은방 본부장 △2001년 고진임포트 부사장 △2005년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2013년 르노삼성자동차 영업본부장(부사장)△2016년 4월 르노삼성 사장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