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이하 맞추려 보유 선박 팔아 호황기 영업 차질
"산업 특성 고려한 정책 유연성 필요"

국내 양대 국적 선사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가운데 회사의 경영 실패뿐만 아니라 업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정책 처방이 해운업계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채 털어내기와 같은 땜질식 처방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해운업의 특성을 고려한 장기적 관점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 설정된 '부채비율 200%'라는 기준이 해운업계의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이 많다.

1998년 3월 당시 은행감독원은 구조조정의 하나로 국내 대기업에 400% 수준이던 부채비율을 1999년 말까지 200%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한 척에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인 고가의 선박을 사려면 회사 자금만으론 어렵고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탓에 부채비율이 높은 해운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해운사들은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선박 신규 구매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보유하고 있던 110여척의 배를 팔아야 했다.

워낙 급하게 팔다 보니 헐값 매각 논란까지 나왔다.

이후 2000년대 초반이 되자 중국발 물동량 급증으로 갑작스럽게 시장 호황기가 찾아왔다.

선박을 대거 팔아버린 해운사들은 영업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결국 고가의 비용을 들여 배를 빌려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이나 일본의 국적 해운사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가면서 배를 사들인 것과 정반대 상황이었다.

결국 호황기임에도 국내 해운사는 경쟁사들보다 큰돈을 벌어들이지 못했고, 이어서 물동량 감소에 따른 공급 과잉과 시장 불황이 닥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황기에 맺은 장기 용선 계약에 묶인 선박이 많아 매년 거액의 용선료를 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

해운업계는 이런 최악의 상황이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해외 터미널은 물론 컨테이너까지 다 팔아버리는 상황에서 2∼3년 뒤 호황기가 올 경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해운사의 한 관계자는 "2000년 초반에는 글로벌 대형 선사인 머스크와 한진해운·현대상선의 규모가 5배 정도 차이였지만 지금은 더 크게 벌어졌다"며 "정부가 해운업 자체에 무심해 국적 선사가 성장하기가 어려운 구조를 만든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확한 진단과 발 빠른 지원으로 경쟁력을 회복 중인 외국 사례를 참고해 해운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연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단순히 부채비율만을 놓고 일괄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대기보다는 업계 특수성 등 기타 상황을 고려해 유연성 있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