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병어 간장조림
병어철이다. 산란기를 앞둔 철이어서 여느 때보다 살이 탱탱하고 맛도 좋다. 미식가들이 ‘봄 도다리, 여름 병어, 가을 전어, 겨울 방어’라고 할 만하다. 흰살 생선인 병어는 살결이 곱고 맛이 담백한 데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요리법도 회, 조림, 찜, 구이, 찌개 등 다양하다. 병어회는 활어가 아니라 선어로 즐긴다. 성질이 급해서 물 밖에 나오자마자 죽기 때문이다. 뼈째 썰어 막된장에 마늘과 함께 깻잎으로 싸 먹는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달달하고 고소하면서 감칠맛까지 두루 갖췄다.

바닷가 사람들은 회보다 조림을 더 좋아한다. 멸치육수에 무를 썰어 넣고 칼집을 드문드문 낸 병어를 앉힌 뒤 갖은 양념의 조림간장을 끼얹는다. 여기에 어슷하게 썬 고추와 대파를 올려 진득하게 조린다. 자작한 국물에 간장과 고춧가루가 적당히 배어 든 간장조림의 깊은 맛은 냄비 속에서 익어갈 때부터 냄새로 먼저 사람을 유혹한다. 달콤한 살점은 아껴두느라, 한입 가득 즙이 퍼지는 무에 먼저 젓가락이 간다. 살이 버터처럼 부드럽다 해서 영어로는 버터피시(butter fish)다.

병어는 원기회복과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알려져 왔다. ‘면역 비타민’으로 불리는 비타민B군과 8대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성인병은 물론이고 여름철 냉방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햇볕 비타민’이라는 비타민D도 100g에 하루치 권장량(5㎍)이 다 들어 있다. 지방 함량이 100g당 6.3g으로 연어(1.9g)의 3배가 넘는다. 지방의 대부분이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다.

병어는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나는 걸 고르는 게 좋다. 눌렀을 때 살이 단단하고 탄력이 있으면 더 좋다. 병어 주산지는 우리나라 서남해안과 일본 남부 해안이다. 낚시로도 잡지만 대부분은 그물로 훑어 올린다. 몸체가 납작해 편어(扁魚)라고도 불리고, 빛깔은 은회색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머리가 작고 목덜미가 움츠러들고 꼬리가 짧으며, 등과 배가 튀어나와 길이와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입이 매우 작고 단맛이 나며 뼈가 연해 회나 구이, 국에도 좋다’고 쓰여 있다. 머리 뒤쪽부터 물결 모양의 줄무늬가 옆줄을 따라 가슴지느러미 뒤까지 나 있다. 물결 줄무늬가 좁고 짧은 것은 병어 사촌인 덕대(덕자)다. 덕대는 몸집이 조금 더 크지만 맛과 영양은 비슷하다.

병어는 수입이나 양식이 거의 없어 해마다 값이 오르고 있다. 때론 “금비늘 입었나” 소리까지 듣는다. 한 젓가락의 하얀 병어 살점에 훌쩍 여름이 왔음을 느낀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