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인 연 1.25%로 내리면서 우리 경제는 말 그대로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한은이 택한 초저금리는 시중에 돈이 돌게 하면서 침체된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려낼 것인가. 조선·해운 등 당장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오른 위기 산업에는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지만 무수한 부실 업종과 한계 산업까지 선순환구조에 들어서게 해 경기를 활성화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작년 말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8월부터 작년 6월까지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는 1%포인트 내려갔지만 이로 인한 경제성장률 상승 효과는 0.18%포인트에 그쳤다. 자산시장을 자극했을 뿐 실물경제 개선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초저금리로 돈을 푸니 통화량도 사상 최대수준을 잇달아 경신하고 있지만 통화유통 속도는 오히려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도 한은의 자체 진단이다. 한은에서 나간 돈이 금융회사를 통해 몇 배의 통화량을 창출했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도 역대 최저(4월 16.9)로 떨어졌다고 한다.

금리를 내려도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올 들어 분기 성장률이 0%대에 머무르며 연간 2%대의 저성장으로 고착되는 것과 앞뒷면의 현상이다. 저금리정책 자체가 경제살리기의 충분조건은커녕 선순위의 필요조건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져간다. 부실기업과 한계산업, 과도한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주는 대증요법에 그칠 뿐,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마이너스 금리조차 투자는 늘리지 못한 채 불안한 미래대비의 저축만 늘어나게 했다는 사실이 덴마크 4년 경험에서 확인됐다. 비슷한 현상은 유로존 국가와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가 경기활성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다.

예상되는 부작용에도 한은이 초저금리를 택한 것은 하루가 다급한 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여건조성 차원이었을 것이다. 경기활성화와 경제의 체질개선은 구조개혁과 규제혁파, 생산성 혁신에 달렸다. 위기적 상황에서 초저금리라는 진통 효과에 젖어 정작 환부수술을 기피하면 우리 경제는 재기가 어려워진다. 막상 돈은 돌지도 않는다는 금리인하로 부동산 거품이나 초래하지 않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