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제적 상시 구조조정만이 경제 살린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우려와 함께 기업 구조조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보면 이 두 가지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으며, 우리도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거품 붕괴로 인해 장기간 발생한 금융경색, 총수요관리 정책의 실패, 저출산·인구고령화, 극심한 엔고, 산업경쟁력 약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미진할 경우 경제적 자원이 부실한 산업이나 기업에 오랫동안 비효율적으로 머물게 되고 생산성 하락과 함께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게 된다. 일본처럼 저출산 인구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압력이 예상되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 및 해법에서 시사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은 장기불황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그리고 초기 대응의 실수가 그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전략적인 오류를 유발하는 악순환을 겪어야만 했다. 구조조정 지연으로 부실한 기업이 많아지고 은행 부실문제가 심각해졌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각 산업에서 대형 합병, 경쟁사 간 사업 통합이 이뤄졌지만 정규직의 장기고용 관행도 있어서 인력 구조조정은 신규채용을 억제하고 고령근로자의 정년퇴직을 기다리는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 결과 구조조정이 지체되면서 경제가 장기간 위축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일본의 구조조정 경험으로 볼 때 한국으로서는 트렌드의 변화를 일찍 인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인구고령화와 저성장 압력 등 한국 경제는 트렌드가 변화하는 시기에 있으며, 과거의 성공방정식이 그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도 해당 산업의 수요 회복을 기다리면서 참고 견디는 식으로 단순한 비용 절감에 주력하는 버티기 자세로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가 있다. 일본은 참고 견디면서 내일의 수요 회복을 기다리다가 20년 이상이나 위기가 지속됐다.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조정에서는 관련자들의 낙관적 희망, 문제를 일단 덮어보자는 심리가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일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금융기관 담당자들이 자신의 임기 중에는 문제 기업의 부실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을 계속해 결국 부실 규모가 확대됐다. 이는 신성장 산업으로 가야 할 경제적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으로서는 경영이나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과거에는 통했던 업계 관행이라도 객관적인 기준으로 검증하면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경제 환경의 급변을 고려할 때 상시 구조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 초기에 산업 구조조정에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산업재생법’을 통해 점차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을 촉진했다. 한국도 일본의 산업재생법을 참고로 한 ‘원샷법’을 도입했다. 이를 잘 활용하는 시스템과 관행을 정착시키면서 원샷법 자체도 개선·보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촉진과 함께 신성장산업 육성책도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성장전략을 본격화한 것은 장기불황에 빠진 뒤 15년 정도가 지난 2000년대 중반이었다. 늦었지만 일본은 규제완화와 함께 정권이 변해도 그린산업, 정보기술(IT), 신소재, 헬스케어 등 유망 성장분야의 생태계 구축에 주력해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축소지향의 구조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장산업을 촉진하는 구조조정과 함께 정권이 바뀌어도 신성장산업의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는 장기적인 신성장전략이 중요하다.

이지평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