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연중 최고에도 시큰둥한 증시
증시가 2000선을 넘어 연중 최고를 기록했지만 투자자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하루 변동률이 0%대에 갇힌 ‘초미니 박스권’ 시황 때문이다. 가격제한폭이 상하 30%로 확대된 뒤에도 잔잔한 호수 같기는 마찬가지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가격제한폭이 확대된 뒤 지난달까지 약 1년간 코스피지수의 하루 평균 변동성(당일 지수의 고가-저가/당일 지수 평균값)은 1.0%로, 확대 전의 0.8%에서 조금 커졌을 뿐이다.

가격제한폭 확대로 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는 불식됐다. 그러나 “투자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정도의 변동성이 나타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한다.

내부 동력 상실이 문제

이 때문일까. 오는 8월1일부터 주식 거래시간이 30분 연장되더라도 시장이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벌써부터 나온다. 거래량이나 거래대금이 지금보다 5% 이상 늘어날지 의문이란 얘기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바뀌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렇다면 현 시기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은 한마디로 무엇일까. 곧바로 ‘내부 동력 상실’이란 답을 내놓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 증시가 자체 동력 없이 외부의 힘(대외 변수)에 의해서만 굴러간다는 것이다. ‘내부 동력’이 없으니 ‘대외 변수’만 들여다보게 되고 의미 있는 주가 전망은 더 어려워진다.

내부 동력 상실의 원인은 △성장 엔진이 꺼져 가는 한국의 산업 △구조조정의 백척간두에 선 한국 기업들 △공급 과잉에 대처하지 못한 정부와 금융권의 무능 △파생상품거래 규제와 같이 투기적 수요(speculative demand)의 불씨를 꺼뜨려 버린 금융 당국의 오판 △변동성보다 안정을 희구하는 규제 당국 △박스권 흐름에서 샀다 팔았다를 되풀이하는 투자자들 등으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성장보다 안정을 희구하는 규제 당국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공모펀드의 길을 일반투자자들에게 열어준 게 대표적인 예다. 장내에선 이른바 ‘먹을 게’ 없으니 부동산 대체투자 등으로 ‘광폭 투자’를 하는 사모펀드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고객과 ‘이익 공유’ 접근해야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단 규제 당국인 정부는 ‘투자는 투기적 요소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출발점에 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 증권사 사장은 “증권 투자자를 예금자와 같은 수준에서 보호하려는 ‘규제 본능’을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과거 동양그룹 사태부터 최근의 주가연계증권(ELS) 대란에 이르기까지 ‘투자자 보호’가 이슈로 제기되지만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로 눈을 돌리면 고객과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정도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증권사 사장을 거친 한 업계 원로는 “증권사들이 목표로 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 두 자릿수는 모두 거래 고객들 덕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ROE의 10%는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각오로 상품을 만들고 영업해야 한다는 고언(苦言)이다. 이 정도 인식 전환과 태도 변화 없이는 한국 증시에 내부 동력의 불씨를 살리기 난망하다는 생각이다.

장규호 증권부 차장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