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권오갑 사장, 수십억 연봉 받게 되시길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에겐 월급이 없다. 벌써 20개월째다. 사장에 취임한 이태 전, 회사는 적자투성이였고 노사관계는 19년 무분규의 기억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험악했다. 답이 없었다. 그는 그해 11월부터 월급을 받지 않았다.

경영자가 잘못했으니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회사가 급격히 나빠지던 때 계열사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맡아 경영정상화를 일궈낸 일등공신이다. 그 역시 현대중공업 출신이니 일말의 책임이 있다 하자. 하지만 회사가 어렵다고 이렇게 오래 급여를 받지 않고 봉사하는 경영자를 본 적이 있는가. 회사는 어려워도 거액의 급여와 성과급을 받아 챙긴 사람들만 수두룩할 뿐이다.

생각해보라. 작년 5월 퇴직한 대우조선해양 전 사장은 지난해만도 퇴직금을 합쳐 21억원을 챙겼다. 회사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5조5000억원의 적자를 봤다. 이 회사가 16년간 산업은행 자회사로 머물며 삼킨 혈세가 6조5000억원이다. 2000년 이후 60여명의 낙하산이 억대 연봉과 퇴직금을 타간 회사다. 근로자들을 볼 면목이 없는 회사가 구조조정이 가능하겠는가.

권 사장 집안이 넉넉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재산과 월급은 다르다. 부실기업 오너들조차 수십억원대 급여를 타내 비난을 받는 게 작금의 현실 아닌가.

권 사장이 월급을 받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회사가 어려워졌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누가 회사의 구조조정에 따라 주겠느냐는 것이다.

권 사장은 사실 누구보다 월급에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현대오일뱅크 사장 때다. 연말이면 전 직원에게 12월분 급료를 누런 월급봉투에 현금으로 넣어 지급했다. 부모 세대들이 그랬듯 월급봉투의 설렘과 기쁨을 함께 느껴보자는 취지에서다. 그는 어깨 으쓱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신입사원들에게 첫 월급을 줄 때는 부모들을 호텔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신입사원들은 꽃다발과 함께 첫 월급 전액이 담긴 누런색 봉투를 부모님께 드리고 큰절을 올렸다. 아들 등에 업혀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 딸을 부둥켜안고 감격에 겨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힌 경영자다.

그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신과 모든 임직원들에게 월급을 하루도 늦게 준 적이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자신도 그런 경영자이고 싶어 한다. 권 사장이 갖고 있는 월급의 의미다.

그의 무보수 경영에는 임원들도 동참하고 있다. 계열사 사장들도 지난 1월부터 무보수다. 현대오일뱅크처럼 대규모 이익을 내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마찬가지다. 정유업계 최고경영진이 1분기에만 적어도 5억원이 넘는 보수를 챙겼는데도 말이다. 임원들 역시 30~50%씩 월급을 반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에 대해서도 임금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주말 특근을 폐지했고 관례처럼 돼 있던 고정 연장근무를 없애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임금이 20%가량 줄어든다. 노조는 반발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회사가 망하고 나면 직원도, 노조도 없다. 게다가 CEO와 임원들이 먼저 뼈를 깎고 있질 않은가.

경영진 탓만 할 일도 아니다. 근로의식 저하도 경쟁력을 갉아먹은 주범이다. 현대중공업 선박은 묻지도 않고 가져간다던 선주들이 부실한 마무리와 청소 불량에 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한 게 벌써 십수 년이다. 노조도 불만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권 사장 나이 예순다섯이다. 직장 생활에 화려한 꽃을 피울 때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회사의 미래에 인생을 내던졌다. 구조조정에 성공한들 금전적 보상이 약속돼 있는 것도 아니다. 실패하면 40년 직장 생활만 허공에 뜰 뿐이다. 사즉생의 구조조정이다.

그는 누런 월급봉투에 빳빳한 현금을 듬뿍 담아 직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는 날이 오길 고대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권 사장도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게 되길 바란다. 밀린 월급이 아니다. 40년 직장 생활의 명예가 아니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