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활법, 공급과잉 예상업종에도 적용돼야
일명 ‘원샷법’으로 알려진 기업활력제고법(기활법)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인 사업재편계획 시행지침 초안이 지난 2일에 공개됐다. 우여곡절 끝에 기활법이 지난 2월4일 국회를 통과한 지 120일 만이다. 지침안은 적용대상을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 평균이 과거 10년 평균보다 15% 이상 감소한 업종’ 등으로 정했다.

기활법 적용범위의 윤곽이 드러남으로써 그동안 유력 대상업종으로 꼽히던 조선, 철강 업종 등의 사업재편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오는 8월13일 기활법 시행 직후 첫 번째 사업재편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입법과정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롭다.

한국의 조선, 철강, 해운, 석유화학, 건설 5대 업종은 한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우리에게 한 수 가르쳐 줬던 일본은 포스코를 부러워했고, 조선업과 석유화학은 우리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자랑스러웠던 조선업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혹독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고, 해운업은 용선료 협상결과에 명운을 거는 처지가 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대우조선 자금지원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나서서 공적 기관에 의한 금융지원이라고 문제 삼을 기세다. 이런 상황에 이르기 전에 한발 앞서 경고음이 울릴 때 선제적으로 사업재편을 했더라면 우리는 ‘광양의 눈물’을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한국 해운업이 국제적 문제아로 취급받는 서러움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기활법은 위기에 한발 앞서 기업이 선제적으로 행하는 사업재편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그동안 법과 시행령에서 적용대상인 ‘공급과잉 업종’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에 산업부가 기활법으로 사업을 재편하려는 기업을 위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처음 제시했다. 이 법이 조금만 일찍 만들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다행히 위기이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잘 하면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업종이 우리에게 많다. 즉 기활법이 적용될 영역이 아직은 많다는 것이다. 부실이 심각한 해운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조선이나 철강, 석유화학 등은 기활법의 적용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업종은 시장의 신뢰 속에 상법·공정거래법·세법상의 각종 특례를 적용받으면서 대량실업이나 지역경제의 붕괴라는 공포 없이 신속히 사업재편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기활법은 입법과정에서 재벌특혜 등의 우려가 제기되면서 적용범위가 과잉공급 분야의 업종으로 제한되고, 지난 2일 발표한 지침 초안에서는 과잉공급 기준이 공개됐다. 과잉공급 업종에 제한되지 않았다면 법의 효과가 더욱 높아졌겠지만, 우선은 현 기준으로도 다수 업종이 기활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활법은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법이다. 과잉공급 상황에 처한 업종뿐만 아니라 업황 악화로 과잉공급 상황이 명백히 예상되는 업종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판단을 위해 업종별 지표, 지속성 기준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비록 적용대상을 과잉공급 분야로 제한하고는 있지만 적용대상 업종과 품목은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런 조치와 함께 기활법의 적용과 운용에서 사실상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업재편심의위원회가 전문성과 객관성을 갖춘 위원들로 구성되고,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해 모든 판단을 한다면 원샷법은 위기의 한국 경제를 구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권종호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 한국기업법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