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과연봉제의 오해와 진실
한국전력은 주요 공기업 군에서 최초로 지난 4월22일 노조의 공정한 투표에 의해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했다. 평소 비교적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경영진이 성과연봉제 도입의 필요성과 도입 시 혜택 등에 대해 충분히 소통을 해왔다고 생각했기에 필자는 투표를 이틀 앞두고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예정된 일본 출장을 떠났다. 당시는 정부와 노동계가 비상한 관심을 두고 있던 성과연봉제가 한전의 투표 결과에 따라 그 판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투표 전날 회사로부터 다급히 들려온 소식은 결과 예측이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성과연봉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줄 알았던 젊은 직원들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심지어 막 입사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최고 상태인 신입사원까지도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몇 번의 낙방 끝에 간신히 취업을 했는데 몇 년 못 다니고 잘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젊은 직원들 사이에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성과자 퇴출제에 대한 오해가 직원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성과가 한두 해 나쁘면 그대로 직장에서 퇴출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과연봉제가 조만간 기능직 직원들에게까지 적용될 것이라는 걱정이 파다했다.

게다가 조기 타결에 대한 인센티브도 결국은 곧 있을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의도적으로 높은 등급을 제외해서 그 재원(財源)으로 주게 될 것이므로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와 같은 것이란 오해도 있었다. 그러니 한전이 무엇 때문에 노동계와 척을 지면서 조기타결을 서두르느냐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다른 공기업들이 하는 것을 봐가면서 서서히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노조의 지배적 여론이었다. 제로섬 게임이라느니 심지어 마이너스섬 게임이라느니, 뺏기는 것밖에 없다는 술렁임도 컸다.

일본에서의 몇 가지 중요한 일정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아침 귀국하자마자 전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퇴출이 목적이 아니라 성과가 떨어진 부서에 대해 좀 더 생산성을 올리고 오히려 퇴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며, 사장은 그런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앞으로 안전이 최우선인 전기원까지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인식 변화를 위한 설득은 쉽지 않았지만 간신히 57 대 43으로 타결됐다.

일본 출장에서 급거 귀국해 직원들에게 편지를 쓰고, 경영진이 전국 사업소를 찾아다니며 설득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한국전력이 과거 어려운 시절에서 벗어나 3년간 신뢰와 소통을 쌓아왔고, 최근 포브스 발표 세계 1위 전력기업이 될 정도로 우수한 실적까지 내면서 우리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근본 원인이 아닐까 한다.

공기업에 대한 외부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그리 곱지는 않다. 그렇지만 공기업도 말 못 할 애환과 어려움이 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지만 오히려 ‘신의 영역’에 있는 수많은 난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공공성을 갖고 국민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책무와 함께 이제는 기업으로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최상의 수익을 창출해야만 한다. 나라경제가 어렵고 외부의 시각이 좋지 않은 때일수록 과감하게 선진제도를 도입해서 국민에게 변화한 모습을 보일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소위 공기업 하면 떠올리는 공무원, 관청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미래를 지향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해법이다.

조환익 < 한국전력공사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