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19대 국회에 제출됐던 이 법안이 자동 폐기됨에 따라 20대 국회에 다시 제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말이 원격의료이지 병의원이 없는 도서·벽지 주민,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동네병원만 가능한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한다는 개정안이다.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원격의료 허용 법안조차 19대 국회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거의 똑같은 법안을, 그것도 여소야대로 바뀐 20대 국회에 그대로 내밀었다. 설사 통과된들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이면 한국에서는 언제 본격적인 원격의료가 개시될지 기약이 없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미국 일본 등은 제한없는 원격의료를 향해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1988년 서울대병원-연천보건소 간 원격영상진단 시범사업 이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오로지 시범사업으로만 날을 지새우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가 야당이나 이익단체가 반대한다고 핵심을 빼거나 이런저런 조건을 달기 시작하면 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아무 효과도 없다. 정부가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문제를 우회 돌파하겠다고 영리 자회사를 들고나왔지만 어찌 됐나. 온갖 허가조건이 붙는 바람에 영리 자회사조차 제대로 된 게 없다. 국제의료지원법도 민간보험사 해외환자 유치 조항이 날아가면서 빛이 바랬다. 정부가 말하는 서비스산업발전법 역시 야당이 요구하는 대로 이런저런 조항을 다 빼고 나면 이름만 남는 법이 될 게 뻔하다.

의료와 서비스업만이 아니다. 정부가 20대 국회에 다시 제출을 시도한다는 노동개혁 4법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들고나오면서 노조에 발목이 잡히더니 그나마 노동개혁법이라고 내놓은 것(파견법은 거의 형해만 남은 상태고 나머지 3개 법안은 사실상 노동복지법안)조차 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들 개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파업 시 외부인력의 대체근로를 인정하는 노조법 개정, 거의 모든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파견법 개정 등 수준 높은 노동개혁안을 짜서 국회와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한다. 핵심이 빠진 껍데기 법안으로는 어떤 개혁도 이루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