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평론가 복거일 긴급제언

조선산업, 새 변경을 개척하라 <2부·끝>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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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GM式 구조조정은 좋은 본보기…美정부, 출구전략 미리 세워둬
대우조선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朴대통령이 맡아 ‘잡음’ 없애야


AI 장착 '잠수함 상선' 파격 설계 해양 플랜트…눈물을 웃음으로 바꿀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가자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은 미국 정부의 제너럴모터스(GM) 구조조정을 참고해야 한다는 얘기는 자주 나왔다. GM이 정부 주도 파산을 통해 멋지게 회생했으므로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2009년 1월 새로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내파된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문제가 자동차산업이 아니라 자동차회사들에 있음은 분명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는 매출이 해마다 2% 이상 줄어들었다. 반면 외국 자동차회사의 미국 공장들(transplant factories)은 매출과 고용을 늘렸다.

경쟁력 상실의 원인도 분명했다. 빅3의 시간당 임금은 외국 자동차회사 공장보다 25% 많았고 은퇴 노동자의 유산 비용(legacy costs)을 포함하면 45%나 높았다. 게다가 빅3 노동자들은 일시 해고 기간에도 임금의 95%를 받았다. 강경한 자동차노조(UAW)가 자동차산업의 활기를 앗아간 것이다.

빅3 비중이 컸으므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GM과 크라이슬러를 함께 구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파산을 통한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미 구조조정을 해온 포드는 정부 지원을 사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2월에 GM과 크라이슬러가 제출한 자구안을 “비현실적이고 불충분하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이 행정부로 데리고 들어간 민간 회생전문가들에게 진지한 구조조정 계획을 요구했다. 이어 협상에 대해 명쾌한 지침을 내렸다. “나는 여러분이 완강하고 상업적이기를 바랍니다.”

GM과 크라이슬러는 현실적이고 진지한 대안을 내놓았다. GM은 빚을 주식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부채를 300억달러 줄이고, 2012년까지 9만6000명인 종업원을 4만5000명으로 감축하고, 임금을 외국 자동차회사 공장 수준으로 낮추며, 약한 사업부와 브랜드를 팔거나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GM은 약속을 다 지키지 못했고, 2009년 3월 릭 왜고너 최고경영자(CEO)는 교체됐다.

2009년 6월 GM은 파산을 신청했다. 열 개가 넘는 공장이 폐쇄됐고 2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주주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채권 소유자들은 채권 가격의 일부만 주식으로 받았다. 6100명이던 딜러도 1100명 넘게 사라졌다. 이사와 최고경영자 다수가 교체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바마 정부가 GM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이미 출구전략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팀은 GM 최대주주로서 정부가 할 역할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영업 목표를 미리 세운다 △유능한 경영자를 뽑고 강력한 이사회를 구성한다 △지배구조 논점과 주요 거래에 대해서만 대주주 역할을 한다 △이사회와 경영자들이 회사를 운영하도록 한다 △납세자 돈을 회수하고 민간 소유자에게 회사를 넘기기 위해 되도록 빨리 정부 소유 주식을 판다.

크라이슬러에 대해서도 비슷한 원칙을 세웠다. 자동차팀이 처음부터 피하려 애쓴 것은 사라져야 옳은 ‘좀비 기업’을 납세자 돈으로 떠받쳐서 불경기를 악화시킨 미국 정부의 실책이었다.

이런 원칙에 따라 파산한 ‘올드 GM’의 잔해에서 ‘뉴 GM’이 태어났고 첫해에 이익을 냈다. GM으로선 10년 만에 맛본 이익이었다. 2013년 12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미국 정부는 GM 주식을 다 팔고 손을 뗐다. 미국 정부는 GM에 지원한 510억달러 가운데 390억달러를 회수했다. 한 추산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개입은 일자리 120만개를 구했고 조세 수입 349억달러를 확보했다.

미국 정부가 청산으로 몰린 GM과 크라이슬러를 구한 과정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두드러진 역할이다. 막 취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한 지도력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별다른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다. 느닷없이 “한국판 양적 완화가 맞다”고 한마디 던진 것이 전부다. 지금 구조조정의 관제탑이 없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데, 누구도 뒷일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관제탑은 대통령이 돼야 한다.

(9) 朴대통령에게 열린 정치적 공간

대우조선은 좀비들의 ‘잔치판’
‘귀족노조’ 실상 등 알려지면
노동개혁, 국민의 지지 받을 것


대우조선 구조조정은 박 대통령에게 행정적 책임을 지우는 것만은 아니다. 대우조선이 워낙 부실하고 그 부실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가 강경한 노조이므로, 대우조선 구조조정은 박 대통령에게 너른 정치적 공간을 제공한다. 공을 들인 노동시장 개혁이 어려워진 박 대통령에게 이런 정치적 공간은 자신의 정치적 일정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대우조선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세금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아니다. 세금을 흥청망청 쓰는 좀비들의 잔치판이다. 실질적 주인인 산업은행 사람들, 산업은행 감독기관들, 권력에 기댄 정치인들이 모두 세금으로 호사했다. 노조는 이런 약점을 잡고 일은 되도록 적게 하고 임금은 많이 받는 데 열중했다. “근로자들은 아침에 일을 늦게 시작하고, 한 시간 일찍 끝낸다. 현장 감독은 매우 우려스럽다. 엔지니어들이 현장에 잘 없다 보니 문제를 그날 해결하지 못해 비효율이 생긴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어느 해상 플랜트 발주자의 평가다.

회사는 부실해지는데, 공적 자금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귀족 노조’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면, 박 대통령은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을 넘어서 자신이 희원한 노동시장 개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성격과 크기에서 이 일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효과적으로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 세력의 정치적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임기 안에 끝낼 수 있어서 흐지부지될 염려도 없다.

(10) 중형 조선소들의 구조조정

정부에서 지주회사 만들어 중형 조선소 4곳 인수하면 틈새시장서 성과 낼 수 있어


묘하게도, 중형 조선소를 한데 묶어 시너지를 얻으려는 시도는 나오지 않았다. 중형 조선소들은 중형 유조선 건조에 뛰어나다. 틈새시장을 찾아 특화할 수도 있다. 우리 중형 조선소들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일본이 중형 탱커 시장에서 수주량을 늘렸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만일 정부에서 지주회사를 설립해 중형 조선소 네 개를 인수해서 시너지를 추구하도록 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14년에 기술력이 높은 STX조선해양과 넓은 작업장을 둔 성동조선을 합병해서 시너지를 얻자는 주장이 나왔었다.

(11) 합리적 인원 감축

희망퇴직 등 점진적 감원은 노조원들만 특혜 누리는 것
설계인력보다 기능공 먼저 줄여야


구조조정 과정은 설비 감축과 인원 감축이 병행된다. 일감이 부족해서 쉬는 도크와 장비는 저장(mothballs)해서 경기가 회복될 때에 대비하면 된다.

인원 감축은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이상적인 것은 줄어들 작업량에 맞춰 인원을 선제 감축하는 방안이다. 외국에선 이 방안이 쓰이지만, 노조 힘이 압도적인 우리 사회에선 쉽지 않다. 아마도 정년을 통한 자연 감소에다 희망퇴직이라는 형식으로 인력을 점진적으로 감축할 것이다.

점진적 감축은 선제 감축보다 부담이 커서 기업의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가므로, 종업원 자질이 꾸준히 낮아지고 사기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점진적 감축의 가장 큰 문제는 노조에 속한 사람들이 특혜를 누린다는 점이다. 맨 먼저 협력업체 기능공이 해고되고, 사무직 연구직 설계직이 줄어들고, 마지막으로 노조에 속한 기능공이 감축된다. 노조의 보호를 받아 보수가 월등히 높은 기능공들은 가장 늦게 감축되고 보수가 낮은 협력업체 기능공이 맨 먼저 일자리를 잃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구조조정 효과도 크게 줄인다.

기능공보다 설계 인력이나 사무직이 먼저 해고되는 것도 문제다. 일감 증감에 직접적으로 수요가 증감하는 것은 기능공이므로 일감이 줄어들면 먼저 기능공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무직을 억지로 줄이면 당장 기업 전체의 효율이 낮아지고, 일감이 늘었을 때 좋은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설계 인력을 한번 줄이면 다시 충원하는 데 오래 걸리고 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일에서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12) 시장 설계 방안

정부, 해군 함정 구매 앞당기면 일감 없는 조선소에 큰 도움
해양 플랜트는 과당경쟁 자제를


조선소 구조조정과 함께 조선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정부가 조선소들에 일감을 주는 것이다. 우리 해운업이 워낙 영세하므로 조선업에 일감을 많이 줄 수는 없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다.

해군과 해양경찰은 상당한 선박 수요를 지녔다. 정부가 함정 구매를 앞당겨 집행하면 해군과 해경의 능력을 강화하면서 조선소들이 힘든 고비를 넘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장 예산을 마련하기가 힘들다면 선박금융을 통해서 조달하는 방안도 있다.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선을 포함한 중화학공업을 육성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방력 강화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해양 플랜트 분야에서 시급한 것은 3대 조선소 사이의 지나친 경쟁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현실적 방안은 발주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된 계약 관행 대신 전반적으로 균형을 이룬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것이다. 은행이 발주자에게 이행보증서를 발급할 때, 은행이 계약 내용을 검토해서 표준에서 벗어난 계약은 이행보증서 발급을 거부하도록 하면 된다.

(13) 근본적 기술 혁신의 가능성

앞으로 무슨 배 만들 것인가?
국책 연구소·조선소 협력하면 혁신 기술 단시일내 개발 가능


위기는 멀리 내다볼 기회를 준다. 지금 조선소들은 물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무슨 배를 만들까.” 그리고 거기서 나온 답으로 필요한 기술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먼저 해양 플랜트 설계에서 근본적 혁신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 해양 플랜트 전문가 박승균 씨는 ‘대한조선학회지’ 기고에서 FPSO(부유식 생산저장설비)가 낡은 배의 선각과 갑판에 설비를 새로 얹는 방식으로 출발했고, 그 뒤로 새로 배를 건조할 때도 옛 설계를 답습했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배와 상부구조를 합리적으로 설계하면 성능을 크게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진지하게 논의할 만한 아이디어다.

새로운 상선도 생각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장착되면 기계는 자율적 존재가 돼 스스로 움직인다. 자율주행자동차와 드론(무인항공기)은 이미 익숙해진 예들이다. 승무원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유령선(ghost ships)도 나왔다.

이런 발전은 잠수함이 화물선으로 쓰일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배가 나아갈 때는 파도를 일으키는 저항(wave-making resistance)을 이기는 데 배의 동력이 대부분 쓰인다. 바닷속에선 이런 ‘조파 저항’이 없어서 잠수함은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태풍과 같은 악천후에도 운항할 수 있다.

잠수함은 배터리를 쓰는데, 충전하려면 잠수함이 부상해서 디젤 엔진으로 발전해야 한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한 터라, 이제는 잠수함이 부상하지 않고 운항할 수 있다.

잠수함의 결정적 제약 요인은 승무원의 내구력이다. 잠수함에 갇혀 여러 날을 보내는 것은 심리적으로 힘들므로, 잠수함은 상선으로 이용되지 못했다. 자율 잠수함으로 이 제약이 풀렸다. 하역이 쉬운 석유와 가스를 나르는 잠수함 탱커의 출현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혁신적 FPSO나 잠수함 탱커를 먼저 설계해서 건조하는 나라는 조선업에서 결정적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이 일은 조선소 차원에서 시작하기 어렵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국책 연구기관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를 중심으로 대형 조선소 연구·설계 부서들이 협력하면 단시일에 실용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이 방안은 퇴직한 연구·설계 인력을 흡수해서 기술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14) 조선업의 새로운 변경

비대해진 한국 조선업계
날렵함 되찾으면 위기 극복
‘변경’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신문들이 ‘말뫼의 눈물’과 같은 주제로 한국 조선업은 기울었다는 비관적 메시지를 전할 때였다. 그들은 예상보다 낙관적이었다. 몇 해 동안 무척 힘들겠지만, 우리 조선소들이 이번 위기를 비대해진 몸집을 날렵하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 조선업은 잃어가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위기를 비대해진 몸집을 날렵하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엄중한 조건절이 걸렸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얘기에서 새로운 변경을 읽었다.

생각해보면 변경은 마음속에 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심리적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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