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운으로 총무원장 뽑겠다는 조계종
대한민국은 ‘추첨 공화국’이라는 얘기가 있다. 유치원부터 자율형 사립고, 군 입대, 공무원 선발에까지 추첨제를 도입하고 있어서다. 패배자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특혜 시비를 제기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추첨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처럼 포장돼 왔다.

종교계도 이런 세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추첨’으로 종단 내 행정 수장인 총무원장을 정하는 법안을 사실상 확정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 혁신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지난 2일 열린 임시회의에서 간선제와 추첨제를 결합한 방식의 ‘염화미소법(拈華微笑法)’을 중앙종회 안건으로 상정키로 했다. 현재는 각 교구가 뽑은 321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로 결정하는 간선제다.

염화미소법의 요지는 선거인단이 세 명의 후보자를 선출하면 종단의 정신적 최고지도자인 종정이 제비뽑기로 한 명을 고른다는 것. 세 후보의 ‘운(運)’에 총무원장 자리를 맡기는 것이다. 최종 단계를 추첨으로 한 것은 금권·비방·폭로선거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법안 이름은 부처님이 설법 도중 연꽃을 들어 보이자 제자인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에서 따왔다.

이에 대해 종단 내 반발이 거세다. 자승 총무원장이 그동안 종단 혁신의 상징처럼 강조해 온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는 지난달 18일 중앙종회에 제출한 결의문에서 직선제 도입을 요구했다. 당시 대중공사를 통해 전국 7개 지역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도 직선제가 60.7%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염화미소법’은 9.3%에 그쳤다. 하지만 특위는 “대중공사의 의견이 종단 전체의 뜻이라고 볼 수 없다. 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직선제가 가져올 폐해가 더 크다”며 염화미소법을 안건으로 채택했다.

더 큰 문제는 종정이 ‘낙점’하는 것도 아니고 추첨을 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책임 회피’라는 점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한다’는 염화미소가 ‘추첨제를 통해 잡음을 없앤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조계종은 오는 21일 중앙종회에서 자유토론을 거쳐 총무원장 선출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고재연 문화스포츠부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