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법에 대해 지난 5일 국민투표를 실시, 76.9%의 압도적인 지지로 부결했다는 보도다. 26개주 모두 반대표가 절반을 크게 웃돌았다고 한다. 반대여론이 60%를 넘는다는 사전 여론조사 결과보다도 반대표가 훨씬 많았다. 스위스의 이런 선택은 핀란드와 네덜란드가 이미 올해부터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스위스 국민은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보다, 청년을 비롯한 전체 계층의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전체 경제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정부와 의회의 설득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스위스 정부는 기본소득 방안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성인에게 월 300만원, 어린이·청소년에겐 월 78만원을 주려면 연간 정부 지출의 세 배를 넘는 248조원이 들어간다며 줄곧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의회도 이런 기본소득법이 시행되면 외부에서 수억명이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들어올 것이라며 유토피아적인 위험한 실험이라고 경고해 왔다.

이번 결과는 스위스의 확고한 시장경제주의를 다시 확인시킨다. 기본소득 제도는 기존 복지 혜택을 통합해 복지 하한을 설정하는 성격이 있다. 그러나 스위스 국민은 감당할 수 없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는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재앙을 부를 뿐이라는 점을 꿰뚫어보고 있다. 불로소득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 땀 흘려 번 돈만이 진짜 소득이라는 인식이 투철하다. 스위스가 2014년 세계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제 도입 안건을 76%의 높은 비율로 거부했던 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스위스가 어떻게 1인당 소득이 8만달러를 웃도는 최정상 경제강국이 됐는지 잘 보여준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미취업 청년수당과 최저임금 이상의 생활임금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스위스 국민의 높은 경제 지력(知力)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