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쓸모없는 남자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모두가 빵 터진 장면이 있다. 칠순 욕쟁이 할머니가 꽃다운 처녀로 변신해 능청스럽게 내뱉는다. “남자는 그저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 잘하면 돼.”

이 말엔 남편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치가 함축돼 있다. 웬만한 것은 감수할 수 있어도 두 가지만큼은 확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둘 다 부실한 남편이라면 부부싸움할 때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라는 볼멘소리를 듣는다지 않는가.

그러나 요즘에는 남자에 대한 기대치가 부쩍 높아진 것 같다. 소위 ‘오빠’가 갖춰야 할 덕목이 너무 많다고 20~30대 남성들은 푸념한다. TV드라마 주인공들을 보면 능력, 성격, 인물, 체격, 배려에다 재력, 비전까지 7종 세트쯤 갖췄다.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있을까. TV가 조장하는 허상이자 환상이다. 그러니 지레짐작으로 서로들 ‘김치녀’ ‘한남충’이라고 비난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신중하다. 아이를 아홉 달 배 속에서 키우고 최소 10여년은 양육해야 하는 여성으로선 남성의 ‘쓸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혼 때 신랑이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주는 것도 자신이 쓸모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란 게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사용가치는 미미하지만 교환가치는 턱없이 비싼 것으로 다이아몬드만한 게 없다.

이제는 근육 대신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그럴수록 남자의 쓸모는 과거보다 줄어들게 마련이다. 집안 내 서열이 남편은 강아지 다음이라는 판이다. 전구 갈아 끼우고, 쓰레기 버리고, 무거운 가구 옮길 때나 쓸 만할까. 영국 속어로 쓸모없는 남자를 ‘bad bargain’이라고 한다. 본래 쓸데없이 비싸게 산 물건을 가리키는데 그런 의미로 전용돼 흥미롭다.

폴 오이어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짝찾기 경제학》에서 어느 사회에서나 남편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임, 편리한 가전제품과 조리식품, 여성우대 복지 등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게끔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출산율 하락과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이다.

최근 변호사 출신인 임윤선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이 “(새누리당은) 능력도 없고, 미래 비전도 안 보이고, 성격도 나쁜, 어디에도 쓸모없는 남자”라고 돌직구를 날려 화제다. 결혼 상대라면 이보다 더 형편없을 수도 없겠다. 그는 “보수는 현재에 긍정, 미래에는 희망을 주는 것인데 새누리는 현재도 미래도 엉망이면서 과거에만 매달린다”고도 했다. 틀린 말 없지않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