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 못 넘기면 용선료 협상에도 먹구름
대한항공·조양호 회장, 한진해운 추가지원 요구에 '묵묵부답'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추가 지원에 나설지 여부가 한진해운의 회생을 결정할 '열쇠'로 떠올랐다.

외국 선주에게 용선료(배를 빌린 값)를 갚지 못할 정도의 유동성 위기를 헤쳐나오지 못하면 경영 정상화의 첫발조차 내딛기 어렵다는 게 채권단 판단이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회장이 한진칼·대한항공을 통해 지배하고 있는 만큼, 결국 조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5일 금융권과 해운업계에 따르면 채권단은 한진해운에 대주주 지원 등 추가 자구안을 요청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대주주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다"며 "그러나 뾰족한 방안이 없는지 회사 측이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진해운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유동성 문제다.

한진해운은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해 해외 선사에 1천억원대의 용선료를 연체한 상태다.

연체한 용선료는 이번 달엔 2천억~3천억원대로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캐나다 선주 시스팬은 한진해운이 컨테이너선 3척의 용선료 1천160만달러(약 137억원)를 밀렸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스 선주 나비오스는 용선료 체납 문제 때문에 지난 24일 한진해운 배를 억류했다가 사흘 만에 풀어줬다.

외국 선주들은 한진해운이 밀린 용선료를 갚기 전에는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해운업 호황기 때 높은 가격에 맺은 용선료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재무구조 개선이 어렵기 때문에 용선료 인하는 한진해운·현대상선 회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용선료 협상 타결에 근접한 현대상선도 지난 2~4월 밀린 용선료를 대부분 갚고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당장 현금을 마련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하며 조양호 회장은 경영권 포기 각서를 제출,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끊었다.

채권단도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에 성공하기 이전에는 추가 지원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은 자산 매각 등으로 4천억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안 이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규모 자체가 부족한 데다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추가로 팔만한 자산도 부족하다.

한진해운의 유형자산은 올해 1분기 말 현재 5조4천억원이지만 대부분이 보유 선박(4조6천600억원)이다.

토지·건물자산은 장부가액 기준으로 1천170억원 정도다.

대한항공과 조 회장 측도 할 말은 있다.

조 회장은 경영난을 겪던 한진해운을 2014년 떠맡으면서 한진칼, 대한항공 등 계열사를 통해 이미 1조원 이상을 지원했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1분기 말 기준 931%에 달하는 등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위기가 다른 계열사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자율협약을 받아들이고 경영권을 놨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주주 지원 없이 한진해운이 생존하려면 산업은행이 1조~2조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능하겠느냐"며 "단기 유동성 문제는 대주주가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로펌 김앤장의 자문을 받으며 대주주 추가 지원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이지헌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