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통신당국의 괴이한 경쟁론
경쟁도 경쟁 나름이다. ‘사이비경쟁(pseudocompetiton)’도 있다. 크리스토퍼 메이어와 줄리아 커비는 《태양 위에 서서(standing on the sun)》에서 사이비경쟁을 사업자들이 적당히 경쟁하는 척만 하는 시장이라고 규정한다. 껍데기만 경쟁일 뿐 경쟁 효과가 전혀 발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시장에서는 정부가 사업자와 한통속이기 일쑤고, 사업자 또한 ‘기업 경영’보다 ‘정치 경영’에 몰두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통신시장이 딱 그 꼴 아닌가.

통신요금 논쟁이 또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여소야대가 되면서 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 법안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이다. 통신사업자는 결사 반대다. 통신 3사는 기본요금이 폐지되면 연간 7조5000억원의 매출이 날아간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통신요금 정치 개입 논란

말할 것도 없이 정치권의 획일적인 기본요금 폐지 움직임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알뜰폰(이동통신재판매) 시장에서 ‘기본요금 제로’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망을 가진 사업자의 처지는 또 다르다. 기본요금 폐지는 당장 망 구축 비용 회수나 지속적 투자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송신자 요금제인 한국에서는 수신만 하는 소비자의 무임승차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기본요금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기본요금 수준이 이대로 좋은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소비자가 현재의 통신시장이 비정상적이라고 인식할 경우 더할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부의 기본요금 폐지 반대 논리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경쟁을 통해 요금이 결정되는 게 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강제로 없애는 것보다 사업자끼리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경쟁이란 도대체 뭔가.

‘사이비경쟁’이 문제다

정부가 폐지하겠다는 요금인가제는 그렇다고 치자(요금인가제나 유보신고제나 그게 그거라는 비판도 있지만). 사업자 간 경쟁에 맡길 수 없다며 단말기 보조금은 물론 이와 연동해 요금 할인까지 규제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만든 것은 정부다(의원입법을 빌려). 정부는 단통법의 성과를 주기적으로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하지만 사업자는 별 걱정 없이 각자의 점유율을 즐기게 됐으니 이처럼 좋은 법도 없다. 가뜩이나 사이비경쟁이라고 의심받는 통신시장이 더 사이비경쟁이 되고 말았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소비자의 부담은 줄지 않은 반면, 이통사의 영업이익은 증가했다”며 단통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말이 맞다면 여당 내에서조차 단통법을 고치려 들겠나.

20대 국회에서 통신요금 기본요금 폐지, 단통법 개정 등 정치공세가 예상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치권의 요금 개입을 불러들인 것은 바로 정부요, 통신사업자다. ‘진짜 경쟁’ 말고는 이를 막을 길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최양희 장관님! 최성준 위원장님! 기본요금은 경쟁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고, 단말기 보조금과 나머지 요금은 경쟁에 맡길 수 없다는 건 어느 책에 나옵니까?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