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회, 차라리 놀게 하자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지난달 30일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에 거는 막연한 기대가 작지 않다. 하지만 20대 국회라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회의 문제는 국회의원 개인으로 인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대부분 훌륭한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분노에 가까운 국민의 불만을 사게 된 것은 법제도가 제공하는 유인구조에 기인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도 보통사람처럼 공익만이 아니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이라고 상정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제도를 스스로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법안 발의와 통과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 국회의원들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없다. 19대 국회는 법안 발의 건수가 약 1만8000건에 달했다. 대부분은 의원 발의 법안이고 정부 발의 법안은 6% 남짓에 불과했다. 가결된 법안의 숫자도 2300개가 넘었다. 1년에 평균 600개 가까운 법안이 가결됐는데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미국은 2015년 115개의 법률이 만들어졌고 일본에선 지난 10년간 1년에 평균 67개 정도가 통과됐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국회를 통과한 법안의 절대 다수는 의원 발의 법안이다. 정부 발의보다 6배 이상 많다. 일본과 독일은 가결 법안 가운데 의원 발의는 정부 발의의 8할 남짓에 불과하다. 이렇게 숫자만을 단순 비교하면 한국 국회만큼 열심히 일하는 국회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모든 일이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은지라 지나치게 부지런한 것도 좋게만 볼 수는 없다. 우선 실적 과시를 위한 법안 발의 건수가 지나치게 많아 결과적으로 ‘쓰레기 법안’을 대량 생산한다. 입법부의 인력 등 물리적 제약을 감안한다면 입법 시스템에 과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하거나 다른 의미있는 일에 쓰일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는 것이다.

가결 법안 수가 많은 것도 좋게만 볼 수 없다. 국회 선진화법은 의원 100명 이상의 반대가 있으면 법안 처리를 강행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 결과 통과된 법안은 쟁점이 없는 법안이 주를 이룬다. 단순한 정비 법안이거나 여야가 서로 용인한 퍼주기 법안이다. 워낙 많은 법안이 처리되는 통에 이 가운데는 특정한 지역이나 집단에 특혜를 부여하는 법안도 흔히 끼어 있다. 반면 정부가 역점을 두는 쟁점 법안은 여야의 지루한 협상 끝에 차 떼고 포 뗀 상태가 되거나 아니면 ‘빅딜’을 통해 소수당이 원하는, 흔히 선심성 법안과 묶일 때만 통과됐다.

내용도 문제다. 시장경제 체제의 폐해를 각종 경제민주화법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적 합리성에만 매달린 결과 투자나 성장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단적인 예로 대기업을 강제로 퇴출시키거나 신규 진입을 막은 여러 업종에서 국내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중소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은산(銀産)분리도 새로운 금융기술(Fintech)의 발달을 저해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폭증하는 의원 입법이 정부 발의 법안에 비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비율은 낮은 반면 강화하거나 신설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도 문제다. 의원 입법의 약 5분의 1은 규제를 강화하거나 신설하고 있다.

이런 입법상의 문제 외에 국회는 최근 들어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지나치게 확대할 뿐 아니라 민간부문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하지만 국회가 달라질 수 있는 법제도의 개혁을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할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리더십과 관련해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 가운데 무능하면서 부지런한 리더가 최악이고 무능하면서 게으른 지도자가 그나마 낫다는 말이 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잘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노는 국회가 나을 수도 있다. 국회 운영에 드는 예산은 민주주의를 위한 불가피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다 같이 참자.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