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아가씨’ 메인포스터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모호필름·용필름
영화 ‘아가씨’ 메인포스터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모호필름·용필름
소설을 토대로 한 많은 영화가 졸작으로 전락했지만, 박찬욱 감독은 영국 작가 세라워터스(Sarah Waters)의 베스트셀러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영리하게 오리고 자르며 매혹의 그물을 짰다. 그물에 촘촘하게 쌓여있는 장면들, 문장들, 얼굴들은 관객에게 다시 돌아와 색다른 의미를 만들고 영화에 풍성함을 불어넣는다. 144분의 러닝 타임 동안 ‘아가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 첫 번째 매혹은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아가씨’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쇼몽’의 구조를 빌려 같은 사건을 등장 인물의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박 감독은 지난달 25일 진행된 언론 시사회에서 “인물들의 얼굴을 따로 따로 찍어서 편집한 장면도 있지만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한 화면에 담겨있는 장면도 많다”고 말하며 “(관객이) 처음 볼 때는 화자의 얼굴만 보게 되는데, 두 번째로 볼 때는 청자의 얼굴도 들여다 보게 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보는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얻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반전 또한 ‘아가씨’의 묘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예상치 못한 반전의 순간은 관객들의 허를 찌르며 짜릿하게 다가온다. 박 감독은 등장 인물들이 같은 문장을 말하게 함으로써 반전이 주는 영화적 쾌감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예를 들어, 히데코(김민희)가 말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생각나는” 무언가와 백작(하정우)이 말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생각나는” 무언가는 다른 울림을 지닌다.

매혹은 감각적으로도 다가온다. 박 감독이 원작을 보며 꼭 사람들에게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목욕 신은 이 영화를 봐야 할 단 한가지 이유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마치 전작 ‘스토커’에서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와 찰리(매튜 구드)가 피아노를 치며 성적인 교감을 나누는 장면처럼, ‘아가씨’의 목욕 신은 관능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숙희(김태리)가 욕조에 앉아 있는 히데코의 이빨을 흔들 때마다, 지켜보는 이의 감각 또한 하나씩 일깨워진다.

히데코가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저택에서 낭독회를 하는 장면은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은밀한 가면 난교파티를 연상시킬 정도로 충격적이고 강렬하다. 몰락한 일본 귀족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룬 코우즈키의 욕망과 상류층의 퇴폐적인 욕망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낭독회 장면은 절제된 호흡으로 인간 내면의 퇴폐를 드러낸다.

‘아가씨’의 깊이감은 이 영화의 ‘다섯 번째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집에서도 드러난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30년대의 분위기를 재현해 냄과 동시에 한국과 일본·서양의 건축 양식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저택을 창조했다. 코우즈키의 저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개 역관에 불과했지만 갖은 수단을 통해 귀족 아가씨의 후견인의 자리에 까지 오른 코우즈키가 자신의 동경과 욕망을 그대로 투시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박 감독 또한 “단지 압도적이라는 인상을 목표한 것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상류계급 지식인 내면의 풍경을 시각화하려고 노력한 결과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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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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