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안 논란

[뉴스의 맥] 상법(商法)과 충돌하는 '모범규준', 지배구조는 기업 결정에 맡겨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안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상법과 충돌하거나 상법에는 없는 내용이 포함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지배구조란 ‘회사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체계’를 말한다.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회사의 관리감독, 이사회, 경영진 및 주주 간 관계가 핵심으로 주로 회사 수뇌부에 해당하는 기관 구조의 문제다. 기관이란 주주총회, 이사회, 감사(감사위원회)를 말하고 이들 3자 간의 권한 분배가 주요 내용을 이루는데, 그 핵심은 이사회의 구성이다.
[뉴스의 맥] 상법(商法)과 충돌하는 '모범규준', 지배구조는 기업 결정에 맡겨야
지배구조가 나쁘면 회사의 관리감독이 느슨해지고 부정부패가 심해지며 위험에 쉽게 노출되므로 기업 부실과 도산의 원인이 된다. 도산은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므로 세계 각국은 회사법에 기업 지배구조를 강행규정으로 정하고 있다. 어떤 기업에 어떤 지배구조가 적합한 것인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으므로 일본 회사법처럼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입법례도 있다. 한국은 상법 중 회사편에 강행규정으로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지배구조에 관한 모든 것을 법률로 상세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법률 규정을 보충하기 위해 마련되는 것이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하 모범규준)이다. 상법상 지배구조 규정은 강행규정인 경성법(hard law)이지만, 모범규준은 연성법(soft law)이다. 경성법과 연성법의 차이는 구속력의 강약에 있다. 연성법은 이를 위반했다고 해서 소송을 할 수는 없지만,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의 구속력이 있다. 연성법으로는 업계의 ‘자율규제’ ‘모범실무’ ‘행동강령’ ‘실행계획’ 등이 있다.

모범규준은 자율규제가 아니라 모범실무에 해당한다. 이것을 강제하는 방식은 보통 ‘원칙 준수, 예외 설명(comply or explain)’ 방식이다. ‘따르라. 따르지 못한 경우는 왜 따르지 못한 것인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한국 영국 독일 일본 모두 이 방식을 활용한다.

한국적 정서에 안 맞는 제도

일본은 2015년 6월 일본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를 공동사무국으로 해 전문가회의를 설치하고, 여기서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정했다. 지난 1월29일 도쿄증권거래소는 2015년 일본 상장회사의 66.4%에 해당하는 1233개사가 모범규준 원칙의 90% 이상을 이행하고 있다는 내용의 모범규준 이행현황을 공시했다. 한국에서는 매년 지배구조 우수기업을 발표한다. 또 대기업 그룹사들이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자율적으로 평가해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 개편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공시가 사실상의 구속력이다. 모범규준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회사를 망신주는 것이다.

독일은 연방법무부 산하에 기업지배구조위원회를 두고 법무부 장관이 주요 기업 감독이사회 이사, 기관투자가, 학계 등의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해 독일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이 규준은 매년 개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가장 최근에는 2015년 5월5일 개정됐다. 독일 모범규준의 내용은 뻔한 것이어서 오히려 심심할 정도다. 유럽에는 여성 임원을 임명하도록 강제하는 법률이 제정돼 있어서 이에 맞춰 여성 임원을 20~30% 임명하도록 한 것이 눈에 띈다. 일본도 사내 여성인력 활용 정도로 가볍게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1999년 모범규준을 도입했고, 이번에 개정하려 한다. 전체적인 방향은 오너 경영을 억제하고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하며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전문경영인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계량경제학적 분석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방향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개정모범규준(안)은 ‘모든 상장기업이 사외이사를 과반수로 임명해야 한다’고 정한다.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검증되지 않은 거수기(擧手機)를 대량 도입해 어쩌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기업의 이사회를 자체 평가해 공시하라’는 것도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것을 하라고 해서 실행될지 의문이다. 이사회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법에도 없는 새로운 개념

‘집행임원제도’는 상법에 규정돼 있지만, 한국적 기업정서에는 맞지 않는 제도여서 2011년 도입한 이래 겨우 한두 회사가 도입했을 뿐이다.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도 미국처럼 다민족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한국에서 외국인을 어떻게 구한다는 것인지 현실감이 전혀 없어 보인다.

주식회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며, 사회사업단체도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 품질의 서비스와 제품을 생산해 인류 생활 향상, 나아가 국민의 행복 증진에 이바지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벌어 주주와 경영자, 종업원이 나누는 것이다. 이사회 구성원은 경영능력을 증명하면 충분하고 다른 조건은 필요하지 않다. 모든 상장기업은 ‘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나 리스크 관리위원회와 같은 위원회를 설치’하라고 하는데 국내 대기업은 이미 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의 권익보호’나 ‘공정거래법 준수’ 같은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런 내용을 모범규준에 넣은 국가는 한국 외에는 찾기 어렵다.

‘지배주주가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주주의 책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인데, 한국 상법에는 없는 개념이다. ‘이사의 임기를 존중’하지 않으면 모범규준 위반이 된다. 상법상 이사 임기는 3년으로 돼 있지만, 이유 없이도 언제든지 총회 특별결의로 해임할 수 있다. 다만 이로 인해 이사가 손해를 입으면 회사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도’는 미국에서도 애리조나주 등 6개 주에서만 시행하는 제도다. ‘경영승계 정책 공시’는 워런 버핏도 하지 않는 경영기밀에 속하는 문제다.

준수비용 폭증하는 또 다른 규제

기업지배구조는 최소한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고, 나머지는 기업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지난 4월18일 공청회에서 발표된 한국형 모범규준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고, 상법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기업에 요구하는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범규준에 상법보다 강한 규정을 둘 수도 있지만, 이때는 반드시 구성원의 자율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수범자의 동의가 없는 규준은 권리 제약과 의무 증가를 의미하므로 반드시 법률로 정해야 하고, 국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쳐야 마땅하다.

개정안처럼 강한 모범규준은 준수비용이 상당히 많이 발생할 것이므로 이것 또한 규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한 사단법인이 일방적으로 제정해 준수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나 합의 없이 시행하려는 것이 최대 약점으로 보인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