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험금, 버티는 보험사 vs 칼 빼든 금감원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사들이 소멸시효(2년)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금감원이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언제, 어떻게 지급할지에 대한 계획서를 지난달 31일까지 제출할 것을 14개 생명보험사들에 주문했지만, 대부분 보험사가 관련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둔 만큼 지급계획서를 제출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금감원은 지급계획서를 내지 않은 보험사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금융사들이 제재를 감수하고 금융감독당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겠다”

자살보험금, 버티는 보험사 vs 칼 빼든 금감원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지연이자 포함 2003억원) 지급계획서 제출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순찬 금감원 보험담당 부원장보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감독당국의 압박 강도가 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감원 요구를 따를 수만은 없다고 보험사 관계자는 전했다. 보험사들은 여러 건의 소멸시효 관련 소송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만큼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자살보험금 청구권 소멸 시효와 관련해 현재 3심(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소송은 모두 6건이다. ING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이 소송 당사자들이다. 지금까지 나온 1, 2심 판결은 엇갈렸다. ING생명이 지난해 8월 1심에서 패했지만, 나머지 소송의 1심과 2심에선 법원이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보험사 관계자는 “내부 법무팀과 외부 법무법인의 법률 검토 결과, 금감원 지시대로 보험금을 지급했다가 대법원에서 ‘소멸시효가 끝난 보험금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면 배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또 일단 지급한 보험금을 대법원 판결 이후에 돌려받는 과정에서 가입자들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제재 절차 돌입한 금융당국

보험사들이 지급계획서 제출을 거부하자 금감원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2014년부터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사이 관련 계약의 80% 이상이 소멸시효가 끝나 버렸는데, 이제 와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달 발표한 대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늦추는 보험사에 대해 엄정 조치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2014년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해 대대적으로 검사를 벌였다. 제재 대상엔 주요 생명보험사가 모두 포함됐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제재를 받은 ING생명이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다른 보험사들의 제재 절차가 중단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달 12일 대법원이 자살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라고 판결한 만큼 중단했던 제재 절차를 다시 밟기로 했다”며 “소멸시효를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계속 거부하는 보험사에 강도 높은 추가 검사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류시훈/김일규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