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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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사진)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비스테온 본사를 찾았다. 일면식도 없던 팀 루리에트 비스테온 회장이 한 대표와 만났다. 한 대표가 “비스테온이 대주주인 한라공조(현 한온시스템)에 대한 투자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루리에트 회장은 웃으면서 “펀드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되물었다. 창업 2년을 갓 넘긴 신생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매출 5조원 안팎, 세계 2위 자동차 부품(공조)회사를 인수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해 12월 비스테온은 한앤컴퍼니와 비밀유지약정(NDA)을 체결하고 기업 실사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 사정에 밝은 한국 PEF에 일부 소수 지분을 넘겨줘도 괜찮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한앤컴퍼니가 4조원이 넘는 자금 조달 방안을 제시하자 루리에트 회장은 한 대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앤컴퍼니가 주도한 컨소시엄에는 국내 1위 타이어 제조업체인 한국타이어가 전략적 투자자(SI)로, 세계 3위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한 대표가 비스테온 본사를 방문한 지 3년이 지난 2015년 6월 한라공조는 한앤컴퍼니의 품에 안겼다.

전통산업에 투자하는 월가의 엘리트

정갈하게 빗은 8 대 2 가르마, 고급 정장 슈트와 넥타이. 한 대표를 만나는 사람들은 미국 월가의 전문 투자은행(IB)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학벌과 스펙도 신뢰감을 준다.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하버드 경영대학원(MBA), 모건스탠리 IB 및 모건스탠리 PE 아시아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PEF 운용사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은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운용사를 창업했다.

월가 최첨단 금융 노하우를 보여줄 것 같은 그가 정작 국내외에서 투자한 기업들은 대부분 전통 ‘굴뚝산업’이다. 업종도 시멘트, 해운 등 다른 PEF가 “경기 변동이 심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야다.

[비즈&라이프] 한국 고집한 '월가 엘리트' 한상원, 전통산업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하지만 전통산업에서 그가 거둬들인 성과는 눈부시다. 창업한 지 6년이 된 한앤컴퍼니가 투자하고 있는 14개 기업의 총 매출 규모는 10조1000억원, 종업원 수는 2만8000여명에 달한다. 기업을 사고파는 PEF이긴 하지만 자산 규모(10조원)로 따지면 재계 32위권인 효성그룹(11조5000억원)과 비슷하다.

투자 기업의 질도 뛰어나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앤컴퍼니가 투자한 쌍용양회, 한남시멘트, 대한시멘트 등 시멘트 회사의 매출은 총 2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2450억원에 달한다. 업계 2위인 동양시멘트(매출 5600억원, 영업이익 470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앤컴퍼니가 사들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벌크선사업부의 총 매출과 영업이익도 각각 6500억원 및 1640억원에 이른다. 동일한 산업의 비슷한 기업과 사업부를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인수합병(M&A) 전략이다.

한 대표는 2013년 2호 펀드(PEF) 투자금 유치에 나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펀드 약정 기간이 10년 이상인데도 3년 만에 투자금 대부분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모펀드가 매물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뉴욕, 홍콩 아닌 서울서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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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투자 성공 비결은 뭘까. 한 대표는 스물아홉 살에 모건스탠리 PE의 한국 대표를 맡았다. 한국 대표라는 거창한 직함과 달리 사실상 1인 사무실이었다. “혼자서 차를 몰고 돌아 다니면서 딜 소싱(투자 발굴)을 하고 보고서를 쓰고 기업 가치를 평가했어요. 3~4년을 혼자서 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즐겁게 일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20대이던 한 대표는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금융회사가 아니라 해외 최고 IB인 골드만삭스와 미국계 대형 사모펀드 워버그핀커스 등이었다. 대학 졸업 후 홍콩에서 모건스탠리 IB로 일하고 있을 때 받은 제안들이었다. 아시아 최고의 PEF 운용사로 성장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KY 탕 회장도 한 대표에게 함께하자는 러브콜을 보냈었다.

한 대표는 이를 뿌리치고 하버드 MBA를 선택했다. 이철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대표가 MBA 동기다. MBA를 마치고 돌아온 한 대표에게 모건스탠리는 뉴욕이나 홍콩 지점 근무를 권유했다. 모건스탠리 출신이 많았던 뉴브리지캐피털(현 TPG)과 워버그핀커스도 그를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한국에 지점을 열겠다고 모건스탠리 본사를 설득했다. 한국에서 제대로 투자하려면 한국에 사무실을 둬야 한다는 투자 원칙을 고집했다. 그 덕택에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투자업의 속성을 20대 후반부터 뼛속 깊이 경험했다. 이런 도전 정신이 한 대표 특유의 자신감과 결단력의 원천이 됐다.

한국 제조업, 포기하기엔 이르다

한 대표가 PEF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부친 덕분이다. 한 대표의 부친은 신세계그룹에 매각되기 전에 조선호텔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한동수 씨다. 한씨가 조선호텔 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창업한 컴퓨터 부품회사 액톤컴퓨터가 미국의 대형 PEF 운용사인 헬맨앤프렌드맨에 팔리면서 PEF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한 대표 나이 열 살(1981년) 때 일이다. 그 인연으로 알게 된 워런 헬맨 헬맨앤프렌드맨 회장은 한 대표의 정신적인 멘토가 된다. 미국이 아니라 모국(한국)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고 권유한 것도 헬맨 회장이다.

어릴 적부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을 강조한 한 대표의 부친은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면 마흔 살 이전에 결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마흔 살을 넘기면 이것저것 따질 게 많아 새 출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표는 2010년 탄탄대로를 걷던 모건스탠리PE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운용사를 창업했다. 그의 나이 39세 때다.

한 대표가 PEF의 성공 비결로 꼽는 3대 요인은 △확실한 투자 전략 △지속적인 재평가(측정) △신속한 의사결정 등 세 가지다. 한 대표의 가장 특징적인 투자 스타일 중 하나는 경기 사이클(주기)을 타는 업종에도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점이다. 대신 섣부르게 결정하지 않는다. 길게는 10년 이상의 직접적인 투자 경험과 분석을 놓고 고민한다.

시멘트 사업에 대한 성공적 투자는 이 같은 전략의 산물이다. 과거 모건스탠리 PE에 근무하던 시절 시멘트 업종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산업 사이클의 특성과 개별 기업의 장단점을 분석한 경험이 주효했다. 당시 모건스탠리는 중국 시멘트업계가 구조조정에 나서기 전에 산둥성 소재 시멘트 업체인 산수이시멘트를 사들인 이후 업계가 재편되던 시기에 회사를 되팔아 원금 대비 4배의 수익을 거뒀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한 대표는 최근 해운업 구조조정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고는 한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상황만 보지 말고 향후 해운 경기가 상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계에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제조업 경시 현상도 우려하고 있다. 수출과 성장이 둔화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 생산 능력을 가진 제조업을 포기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 경제나 서비스산업만큼 중요한 것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으로, 국부를 늘려온 한국 제조업입니다. 위기를 뚫고 나갈 체력을 키우고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면 메이드인 코리아가 세계 정상에 다시 우뚝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 한상원 대표 프로필

△1971년 서울 출생 △1990년 미국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 고등학교 졸업 △1994년 예일대 경제학과 졸업 △1994년 모건스탠리증권 입사 △2000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 수료 △2000년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 입사 △2006년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 글로벌 파트너 및 아시아 최고투자책임자 △2010년 한앤컴퍼니 대표이사


좌동욱/이동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