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 모방으로 발전해 온 한국, 여러 측면서 한계에 직면
수험생을 혼란에 빠뜨리는 꼼수 난무하는 수능으로
창의적 인재 기르는 건 불가능한 꿈
무리가 가도 객관식 수능평가는 접어야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
[다산칼럼] 창의성 가로막는 객관식 수능시험

21세기는 글로벌 시대다. 과거의 구멍가게는 동네 한구석을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지구촌 어디에도 진출해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을 의미하며, 세계 어디에서도 버텨낼 열정과 실력이 있는 인재를 기르는 일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미래 설계다.

인재의 핵심이 창의성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듯싶다. 이처럼 창의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추종과 모방으로 빠르게 발전해 온 우리가 이제는 여러 측면에서 한계에 다다른 때문일 것이다. 세계를 제패했던 우리의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이 요즈음 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경제불황과 부실경영, 비효율적인 고용체계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지만 덧붙여 중요한 점을 꼽자면 우리만의 독창적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가면서 터득한 기술 분야는 후발국도 우리를 쫓아 오게 마련이다. 조선산업의 챔피언이던 유럽은 그 자리를 1970년대에 일본에 빼앗겼고, 일본은 다시 2000년대 들어 한국에 1위를 내줬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에 쫓기는 중인데, 2015년도 선박 건조는 한국이 전 세계 물량의 40%로 1위, 일본이 30%로 2위, 중국은 25%로 3위를 차지했다. 중요한 점은 일본이 굳건히 이 분야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인데, 생산기술은 많은 부분 추월당했어도 부가가치가 훨씬 높은 설계기술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융합산업인 해양플랜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설계기술이며 그 요체는 창의성이다.

옛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효율적인 새로운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설계기술이다. 쫓기고 있는 생산기술력만으로는 우리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 설계능력을 지닌 창의적 인재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심각한 점은 이런 문제가 여타 산업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해 바꿔야 할 제도와 관습은 너무나 많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험과 평가제도다. 인재를 키우는 과정에서 시험과 평가는 불가피한 일인데 이를 통해 창의성이 길러지고 창의력 있는 인재가 선택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높은 경쟁력을 지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은 아주 심각한 걸림돌이다.

하루 종일 다섯 개 답안 중에 정답 하나를 골라내고, 이를 컴퓨터로 채점해 60여만명의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수능이다. 창의성은 이렇게 정답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이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길러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참고로 다음은 지난해 수능 과학탐구영역의 시험 문제다.

문제: 휴대전화 통화에 대한 설명이다.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

(1) ㄱ (2) ㄴ (3) ㄱ, ㄴ (4) ㄱ, ㄷ (5) ㄴ, ㄷ

<보기>
ㄱ. 통신에는 초음파가 사용된다.
ㄴ. 마이크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꾼다.
ㄷ. 안테나는 전자기파를 송신하거나 수신한다.

문제의 ‘있는 대로’는 복수가 정답일 확률이 높은 것을 암시하며 실제로 여기서도 (5)번이 정답이다. 그런데 ‘있는 대로’가 붙어 있는 문제에서도 약 30%는 단수가 정답이었는데, 이는 결국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꼼수일 따름이다. 이런 어지러운 시험에서 골라내고 찍어내 정답 몇 개를 더 찾았을 때 학생들은 이를 ‘수능대박’이라 부른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에서 우리의 수능과 같은 목적으로 보는 시험이다. ‘니코틴 섭취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를 장기적, 그리고 단기적 관점으로 구분해서 기술하라’는 이 시험에 출제된 과학문제를 우리의 수능문제와 비교해 보면 아쉽다 못해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 이런 수능제도로 창의적 인재를 기르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무리가 가도 이제 객관식 수능평가는 접어야 한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