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 부여할까

[뉴스의 맥] 중국 MES 부여 논란…글로벌 보호무역기조 강화 우려
지난 2월, ‘Say No to MES For China(중국 시장경제국 지위 부여는 안 돼)’라고 적힌 피켓을 든 유럽 17개국 500여명의 제조업 종사자가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앞으로 모여들었다. 유럽철강협회와 유럽제조업연맹이 주관한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중국을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덤핑 면허’를 건네주는 것이라며 중국 시장경제국 지위(MES·market economy status) 부여에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밀어내기 수출 여파로 주요국 제조업 전반에 구조조정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뉴스의 맥] 중국 MES 부여 논란…글로벌 보호무역기조 강화 우려
미국과 유럽 제조업계는 중국에 MES를 부여하면 중국 수입재에 대한 방어막이 와해돼 결국 수입 급증으로 자국 산업이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 정부 및 EU 의회 역시 중국에 MES를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 의견을 나타낸 가운데, 중국의 덤핑 수출 및 보조금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수입규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과잉과 중국 MES 부여 논란으로 촉발된 무역 갈등이 세계 보호무역기조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어 글로벌 통상환경의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경제국이란 원가, 환율, 가격 등을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결정하는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MES를 부여한다는 것은 상대국이 시장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이 개념은 주로 국제무역, 특히 덤핑 판정과 반(反)덤핑 관세율 산정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로 미국 반덤핑 법에서는 자원배분, 기업의 가격 및 생산 결정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생산수단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 외국인 투자 허용 정도 등을 시장경제국 판단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시 정부의 시장개입을 문제삼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최장 15년간 비시장경제국(NME·non-market economy) 지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다수의 덤핑 제소를 당하면서 NME 지위가 자국 수출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 MES 획득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중국은 양자 간 협상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80여개국으로부터 MES를 부여받았으며, 아직까지 미국, EU, 일본, 인도 등은 MES를 부여하지 않은 상태다.

"중국산에 대한 방어막 와해"

오는 12월11일로 중국 WTO 가입의정서에 명시된 15년 기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중국 WTO 가입의정서 내용에 대한 법적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중국은 관련 조항의 만료가 중국에 대한 MES 자동 부여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 EU 등은 자동 부여를 의미하지 않으며 중국 정부가 여전히 시장에 개입하고 있어 MES 부여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국에 대한 MES 부여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널리 활용되고 있는 반덤핑(AD) 조치 활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덤핑마진율은 수출가격에서 정상가격(수출국 국내 시장가격 혹은 구성가격)과 수출가격의 차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미국 등 주요국은 NME 수출국의 시장가격이 신뢰도가 높지 않다고 간주, 자국 법 혹은 규정 내에서 제3국 가격 등 대안적 방법을 사용해 덤핑마진을 책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A국이 OO제품 수입에 대한 AD 제소 시 시장경제국인 B국가에 대해서는 B국가 내수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33.3%의 덤핑마진율을 부과하는 반면 비시장경제국인 C국가는 C국가 내수시장 가격이 아니라 제3국인 D국가의 가격을 기준으로 100%의 덤핑마진율을 산정할 수 있다.

미국 등은 중국산 수입에 대한 AD 제소 시 내수가격이 높은 제3국 가격을 기준으로 고율의 AD 관세를 부과해왔다. 중국은 이런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산정기준이 부당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이제까지 고율의 AD 관세 부과를 통해 수입을 규제해온 미국, 유럽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MES 부여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에서의 공장폐쇄, 대규모 해고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자국 산업 몰락에 대한 위기감과 중국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다다르고 있어 중국 MES 부여는 정치·사회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와 EU 집행위가 중국에 MES를 부여하기는 매우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이 이 이슈를 WTO 분쟁해결절차에 상정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는 중국에 시장경제국 입증 부담을 지우고 동시에 MES 자동 부여에 대한 판단을 WTO로 돌림으로써 정치·외교적 부담을 덜기 위한 미국의 속셈으로 풀이된다.

무역전쟁 비화 우려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EU는 중국에 대한 다수의 AD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는 고율의 AD 관세를 미리 부과해 놓음으로써 중국에 대한 MES 부여가 불가피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AD를 포함한 무역구제조치 활용을 쉽게 하고 여타의 수입규제 조치 확대를 위해 관련 법규 및 규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중국 정부는 MES 부여 논란을 비롯해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의 압력 행사와 중국산 제품의 수입규제 강화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맞대응 차원에서 수입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주요국 간 통상 갈등이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상품 수출에는 부정적

중국은 주요 교역국인 한국에 지속적으로 MES 부여를 요청했고, 한국은 2005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중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MES 부여에 합의했다. 최근 중국산 수입 급증으로 철강 등 국내 산업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업계에서는 정부에 AD 제소를 비롯한 수입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 MES를 부여한 상황에서 중국산에 대한 AD 제소의 실효성은 낮은 편이고 한국 경제의 높은 수출의존도를 감안할 때 정부의 수입정책 강화 가능성도 요원해 보인다.

중국에 대한 MES 부여 논란과 이로 인한 수입규제 강화 불똥은 한국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EU가 중국에 MES를 부여하면 고율의 AD 관세 부과가 어려워져 해당 시장에서 중국산의 상대적 가격경쟁력 개선이 우려된다. 더불어 미국, EU에서 수입규제가 강화되고 한국에 대한 ‘공급과잉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어 한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보호무역정책 확산에 따른 수출환경 악화와 더불어 무역장벽에 막힌 중국 수출물량이 상대적으로 장벽이 낮은 한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 우려된다.

김지선 <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