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실업종인데…조선·해운 여신등급 '이중 잣대'
시중은행들이 구조조정이 한창인 조선과 해운업종의 기업 여신에 대해 서로 다른 자산건전성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업종에는 낮은 등급을 준 반면 조선업종은 대부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금융당국의 입김 때문에 은행들이 건전성 등급을 낮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부실업종인데…조선·해운 여신등급 '이중 잣대'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31일 한진해운 여신 등급을 요주의에서 고정으로 내릴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한진해운에 회수의문, KEB하나은행은 요주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현대상선도 대부분 은행이 등급을 짜게 주고 있다. 신한은행은 충당금을 100% 쌓는 추정손실로 분류했으며, 국민·우리·농협은행은 회수의문 등급을 줬다. KEB하나는 고정으로 분류했다.

자산건전성 등급 분류에 따라 은행이 쌓아야 하는 충당금 규모가 달라진다. 건전성 분류가 은행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르면 자산건전성 분류에서 정상 등급은 여신액의 최소 0.85%, 요주의는 7%, 고정은 20%, 회수의문은 50%, 추정손실은 100%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반면 은행들은 조선업종에는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신한·국민·우리·KEB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이 모두 정상 등급을 매겼다.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는 정상 유지가 맞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구조조정은 수주 공백 등을 대비한 성격이 크다”며 “지금은 등급을 내릴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민은행을 제외한 신한·우리·KEB하나·농협 등 4개 은행이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1분기 대우조선해양 여신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낮추고 1000억원가량의 충당금을 쌓았다.

금융당국이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대우조선해양의 등급 하향을 막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총대를 멘 것. 대우조선해양 여신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이 이후 다른 은행의 추가 등급 하향을 막기 위해 직·간접적인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은 조 단위 적자를 낸 데다 산은 주도로 강력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정상 여신으로 보기는 힘들다”며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등급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대우조선해양 등급이 한꺼번에 떨어져 대규모 충당금을 일시에 쌓아야 할 경우 은행의 실적 충격 등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자산건전성 등급은 충당금, 즉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은행장의 경영 방침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대우조선해양처럼 은행이 사실상 타의에 의해 등급 조정을 못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욱진/김은정/이현일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