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아가씨’ 주연 배우 하정우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영화 ‘아가씨’ 주연 배우 하정우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좋은 영화’의 기준 중 하나는 그 영화를 볼 때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여운과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 영화만의 온전한 세계와 깊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영화가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잘 짜여진 스토리 구조, 아름다운 미쟝센, 배우들의 연기력은 기본이다. 명감독과 명배우가 만났을 때 시너지는 배가된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에서 배우 하정우는 뼛속부터 약은 사기꾼과 순진한 청년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도, 자신만의 색으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박 감독의 작품 세계에 걸어 들어온 하정우를 만났다.

10. 칸 영화제에서 앞서 선보였던 ‘아가씨’와 한국에서 개봉 예정인 ‘아가씨’와 다른 점이 있나.
하정우: 한국에서 선보일 ‘아가씨’는 칸 영화제에서 공개했던 ‘아가씨’를 좀 더 세공한 버전이다. 컷 길이를 미세하게 수정했고, CG가 들어갔고, 색감을 더욱 아름답게 손봤다. 사운드도 훨씬 좋아졌다. 칸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던 버전을 계속된 작업을 거쳐 미세하게 조정했다.

10. ‘아가씨’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케이퍼 무비 같다고 표현했다.
하정우: 숙희(김태리)를 데리고 저택에 들어가 히데코의 재산을 빼먹어야 했다. 그렇게 미션을 갖고 또 완수해 나감에 있어서 케이퍼 무비의 스릴러 형식을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10. 백작 캐릭터에 ‘생기’가 있다. 세속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고 능글맞게 변모하는 백작이 평소 순발력 넘치는 면모와 잘 어우러진 것 같은데, 백작 캐릭터를 어떻게 구성해갔나.
하정우: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백작 역으로 제시된 지문들이나 대사들이 낯설지 않았다. 이런 라인들이 박찬욱 감독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어떤 형태를 띌 것인지 궁금했었다. 영화 ‘멋진 하루’의 조병운, ‘비스티보이즈’의 재현처럼 비슷한 리듬감을 가진 캐릭터들을 보면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해줄 배우를 찾는다는 느낌을 시나리오에서 발견했다. 그래도 어려웠던 것은 있다. 시대물이고 문어체적인 대사가 나 자신의 능글맞은 리듬감과 만났을 때 처음에는 잘 붙지가 않더라. 대사들을 내 것으로 체화(體化)시키는 데 애를 많이 썼다.

10. 일본어 대사를 소화하는 것 또한 어려웠겠다.
하정우: 문어체인데다 고어를 많이 쓴 일본어 대사여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古 일본어로 ‘입체감’이라는 단어를 소화해야 됐었는데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말이더라.

배우 하정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하정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10. 박 감독과의 촬영은 어땠나.
하정우: 감독님은 리딩을 좋아했다. 영화 촬영 3개월 전부터 리딩하는 팀은 처음이었다. 작가와 일본어 선생님 세 분까지 참석해서. 놀라운 점은, 리딩하다 배우가 버벅거려도 그 버벅거림이 신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고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벅거려줘”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세밀하고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업그레이드한다. 특히 한글 단어의 장·단음을 굉장히 많이 체크한다. 낮이 지난 후의 밤과 먹는 밤의 발음 차이 같은 것들이다.

10. 박 감독에게서 거장다운 면모를 느낀 점이 있다면.
하정우: 고민의 깊이가 다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의 공통점이다. 시나리오의 설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바로 답변이 온다. 굉장히 유연하다. 연출 막내 스태프의 아이디어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고민을 한다. 그런 것이 정성스럽다. 또 같이 일하는 사람과 쌓는 신뢰, 인연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워크를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클래식하면서도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로서 응당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분인 것 같다. 사실 연출의 기술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작법은 취향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장’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단,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보면 훌륭함이 느껴진다. 감독님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최고 중 하나다. 너무나 운좋게 그런 감독님과 작업을 하게 됐다. 그런 면에서 ‘아가씨’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10. 감독들에 따라 배우로서 현장에 임하는 역할, 책임감도 달라질 것 같다.
하정우: 박 감독님은 이미 고민을 끝내놓고 배우를 만난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아이디어를 물어보고, 또 언제든지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말한다.

⇒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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