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고력의 시대가 온다
EBS 다큐멘터리 ‘왜 우리는 대학을 가는가’에서 당혹스러운 대목을 봤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회의 폐막 기자회견장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만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그런데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한국 기자 중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결국 기회는 중국 기자가 가져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두려움 앞에 패기와 열정을 잃어가는 사람들, 더 이상 치열하게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많은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16일 미국 대형 법무법인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는 인공지능(AI) 변호사 ‘로스(ROSS)’를 고용해 법대를 갓 졸업한 초보 변호사가 하던 일을 맡게 했다. 로스는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며, 1초에 10억장의 문서를 검토할 수 있다. 아마존은 AI인 ‘알렉사(Alexa)’가 적용된 주방용 로봇과 비서 로봇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 구글은 AI가 쓴 연애소설을 최근 공개했으며, 그림을 그리는 AI ‘딥드림’은 추상화를 그려 그중 29점을 지난 2월 9만7000달러(약 1억1600만원)에 팔았다. 이른 시일 안에 인간이 담당하던 정보수집, 검색, 분석, 이를 통한 결론 도출 및 비교적 깊이가 낮은 사고력을 이용한 분야는 모두 AI의 몫이 될 것이다.

한국의 학교는 ‘질문 없는 학생’을 키워내고 있다. 정부, 국가기관 등의 간담회에서는 이른바 ‘사전 질문지 작성’이 성행하고 있고,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조찬 모임이나 국제 콘퍼런스 행사장에선 토론 없는, 생명력 잃은 연사의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일상이다.

인간이 AI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기계를 이길 수 있는 건 집약적 정보 검색, 분석을 뛰어넘는 파괴적 상상력과 영성적 직관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사고하는 교육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시나리오 없는, 살아 있는 토론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스마트한 기계를 통제하기 위해선 알고리즘화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사고력이 진화해야 한다. 결국 그런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가 미래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사고력의 싸움이다.

이영 < 한국여성벤처협회장 kovwa@kovw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