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숙제 안고 열리는 '세계반도체 총회'
세계반도체협회(WSC) 총회가 26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다. 한국에선 2010년에 이어 6년 만에 열리는 행사다. 올해는 WSC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한국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대만이 참여하고 있는 반도체 관련 다자협의체인 WSC는 1996년 닻을 올렸다.

한국반도체협회는 이 행사를 1년 이상 준비해 왔다. 하지만 참석 인사 면면이나 회의 내용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인텔 퀄컴 마이크론 등 세계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오지 않는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주도하는 칭화유니그룹도 마찬가지다. 독일 일본을 대표하는 인피니언과 도시바의 CEO도 찾아볼 수 없다. 네십 세이너 인터실 CEO(미국), 추츠윈 SMIC CEO(중국), 니키루 이트론 CEO(대만), 사이토 쇼조 도시바 전자부품사업부 수석부사장(일본) 등이 각국 협회를 대표해 참석하는 정도다.

20주년 기념식에선 박성욱 한국반도체협회장(SK하이닉스 사장)이 ‘서울선언문’을 발표한다. 하지만 선언문을 살펴보면 지난 20년간 반도체가 인류 발전과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을 기념하는 내용과 다가올 미래에도 반도체를 통해 인류의 번영과 진보를 이루자는 의지 정도가 담겨 있다. 업계 현안인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반도체산업 지원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반도체산업, 과거 20년과 미래 20년’을 주제로 한 각국 협회장들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다루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는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40년 이상 기술 발전을 지탱해온 ‘무어의 법칙’은 폐기됐다. 수요가 정체되자 업체 간 인수합병(M&A)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진다. 이런 판에 중국은 나랏돈으로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섰다. 반도체에서도 공급 과잉으로 인한 생태계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20년이 반도체 성장기였다면 앞으로 20년은 격변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총회는 ‘말의 성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진솔하게 현안을 토론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