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펀드 명품 자산운용사] 은행에 묶였던 돈 '대탈출'…자산운용사 800兆 굴린다
시중금리가 떨어지면서 자산운용사가 황금기를 맞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에 묶여 있던 자금이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금융투자상품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모펀드와 일임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공모펀드 시장의 성장세도 꾸준하다. 퇴직연금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으로 들어오는 자금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운용자산 800조원 돌파”
[명품 펀드 명품 자산운용사] 은행에 묶였던 돈 '대탈출'…자산운용사 800兆 굴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운용사의 운용자산은 전년 말보다 137조원 늘어난 818조원으로 나타났다.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이 중 펀드 형태로 운용사에 흘러든 돈은 421조원이다. 1년 전보다 44조원 증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금액에 관계없이 누구나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로 17조원, 기관투자가와 고액 자산가 전용상품인 사모펀드로 27조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자산운용사에 알아서 돈을 굴려 달라고 맡긴 일임계약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일임계약 총액은 397조원으로 전년 말(304조원)보다 93조원 늘어났다. 일임계약을 선호하는 연기금과 보험사 고객이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굴리는 돈이 커지면서 운용사의 수익성도 큰 폭으로 개선됐다. 작년 운용사 순이익은 총 4736억원으로 전년 대비 13.4%(561억원) 증가했다. 대한민국에 펀드 열풍이 불었던 2007년 이후 최대치다. 다만 몇 곳의 대형사가 순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구조는 여전했다. 확실한 히트상품이 있거나, 기관 영업망이 탄탄한 대형사가 시장을 좌지우지했다는 분석이 많다.

“주식 대체재를 찾아라”

최근 자산운용업계의 최대 화두는 ‘탈(脫) 주식’이다. 국내외 증시가 정체되면서 주식에만 투자해서는 투자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펀드 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공모형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11조1450억원이 빠져나갔다. 박스권 증시가 이어지면서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국내 공모 주식형 펀드는 최근 1년 동안 평균 9.25%, 3년 동안 평균 3.22%의 손실을 냈다.

김현기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부문장은 “주식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공격적으로 주식형 펀드에 돈을 집어넣는 투자자가 많이 줄어들었다”며 “수수료가 싼 상장지수펀드(ETF)에만 돈이 모이는 모양새가 바뀌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주식과 채권을 적절히 섞은 혼합형 펀드(10조1100억원)와 채권에만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8조2083억원)에는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안전 지향적인 예금 투자자들이 주식형 펀드 대신 채권형이나 혼합형 상품을 골랐다는 설명이다.

주가연계증권(ELS)을 펀드화한 주가연계펀드(ELF), 원자재 값 연계 펀드 등 대안투자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3년간 대안투자 상품에 들어온 자금이 4조3297억원에 달한다.

“퇴직연금과 ISA가 양 날개”

전문가들은 재테크 시장에서 운용사의 존재감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가계 자산에서 금융투자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은 만큼 어떤 형태가 됐건 자본시장으로 가계 자금이 흘러들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특히 퇴직연금은 시장의 기대가 크다. 한국은 퇴직연금 도입 초기로 매년 연금에 새로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월등히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26조4000억원이다. 2014년 말 107조685억원과 비교하면 20조원 가까이가 새로 들어왔다. 이 중 공모펀드로 들어온 자금은 2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모펀드를 포함한 금융투자상품으로 더 많은 연금 재원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원금을 보장하는 예금 상품의 매력이 반감됐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론 미국처럼 대부분의 연금 재원을 금융투자상품에 투입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3월 도입된 ISA도 중장기적으로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국민의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을 줄여주기로 한 만큼 시중 유동자금이 조금씩 금융투자상품으로 흘러나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ISA 도입 10주 동안 1조6662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ISA는 펀드와 예금, 파생상품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절세 계좌다. 이 계좌에서 발생한 수익 중 최대 250만원에 대해 세금 면제 혜택을 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