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흔들리는 당을 쇄신할 혁신위원장에 3선인 비박계 김용태 의원을 어제 선임했다. 혁신위는 20대 총선 참패 원인을 진단하고 당 쇄신안을 마련한다. 새누리당은 이로써 전당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는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용태 혁신위원장의 ‘투 톱’ 체제로 운영된다. 비대위는 전당대회 준비, 당헌·당규 개정 등의 관리를, 혁신위는 전반적인 당 개혁을 주도한다. 청와대도 이원종 전 충북지사를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등 비서실을 전면 개편했다. 총선 패배 한 달 만에 수습에 들어간 것이다.

새누리당은 당초 혁신위원장에 사회 원로, 야권 인사 등 외부인사를 영입한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물망에 오른 인사들이 모두 고사하자 부득이하게 김 위원장을 추대했다고 한다. 물론 김 위원장은 40대 중도개혁파로 당에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뼛속까지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새누리당이 ‘지려야 질 수 없다’던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무엇보다 이념과 철학의 부재에 근본 원인이 있었다. 공약다운 공약도, 참신한 인재 영입도 없이 총선이 임박해서까지 공천 싸움질로 지새웠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친박들은 ‘형님, 아우’식 패거리즘 행태를 보였을 뿐, 왜 새누리당을 찍어야 하는지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당을 수습하겠다는 정 원내대표는 찍히는 사진마다 비굴한 함박웃음이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만나서는 대뜸 “형님” 소리나 외치고 있으니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모르겠다. 청와대의 인적혁신이란 것도 수석들을 돌려막기 하는 수준에 그쳤다.

위기에 처한 정당이 개혁에 성공하려면 뚜렷한 이념과 철학을 토대로 모든 것을 쇄신해 나가야만 한다. 그래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총선 참패 후에도 친박·비박 갈등이 재연되고 당 재건조차 ‘비대위원장은 친박, 혁신위원장은 비박’의 나눠먹기다.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린 판에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뭘 반성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