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비핵화 없는 '가짜 대화'는 유해하다
지난 6일 열린 북한의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북한이 “인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일 수 없다면 당대회를 열지 말라”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어기면서까지 36년 만에 당대회를 강행한 것은 ‘김정은 유일영도 체제의 존속’이라는 절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든 일정은 ‘김정은 치켜세우기’에 맞춰졌고, 이를 위한 중심 화두는 ‘핵(核)무력 건설’이었다.

노동신문을 포함한 관영 매체들이 김정은 제1비서를 ‘21세기의 태양’으로 추앙하는 가운데, 당대회는 김정은을 당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인민군최고사령관, 국방위 제1위원장 등 무려 아홉 개의 직함을 가진 지도자로 만들었다. 권력엘리트의 재편을 최소화하고 김영남, 최태복, 김기남, 박봉주 등 상당수 원로들을 잔류시킨 것도 지도자의 권위와 역사적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영희의 우상화와 김여정의 급격한 신분상승을 보류한 것도 최고 지도자에 맞춰진 초점을 흐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경제에서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한 것도 과장된 선전보다는 경제실상을 솔직히 인정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불필요한 원성을 피하고 친(親)인민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7차 당대회는 개회사, 당중앙위 사업총화(결산) 보고, 사업총화 결정서 등을 통해 경제, 사상,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와 비전을 거론했지만, 백미는 핵문제였다. 당대회는 ‘핵무력 건설’을 지도자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고 ‘수소탄까지 보유한 불패의 군사강국’으로서의 행보를 다짐함으로써 사실상의 ‘선핵(先核)정치’를 선포했다. 이를 위해 ‘첫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4호 발사의 대성공’ 등을 자축하면서 당규약을 개정해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는 배수진을 쳤다. 이제 핵무력은 북한의 유일영도 체제를 담보하는 핵심수단이자 국시(國是)이며 동시에 국가정체성 그 자체가 됐으며, 제7차 당대회는 북한 스스로를 ‘핵의, 핵에 의한, 핵을 위한 공화국’임을 선포한 거대한 정치이벤트였다.

북한이 당대회를 통해 “자주권을 침해받지 않는 한 선제 핵사용을 하지 않을 것”, “세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 “핵전파 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 등을 거론한 것도 ‘핵포기 불가’의 다짐이었다. 즉, 자신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를 위시한 대북제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는 내용을 상투적인 외교적 표현을 빌려 밝힌 것이었다. 이렇듯 북한이 당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핵광기(狂氣)를 내보임에 따라, 한국은 ‘제 살을 도려내면서까지 상대의 뼈를 끊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기로 북한의 일방적 핵보유를 불허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기본적으로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은 대화와 제재 그리고 군사적 억제라는 세 분야로 압축되지만, 지금은 강력하고 일관된 북핵 제재를 위한 외교와 군사적 억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대화와 협상은 핵해결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지만, 평양정권이 비핵화를 안중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의 ‘가짜 대화’는 북핵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 균열을 초래하고 북한에 시간을 벌어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무익(無益)한데 그치지 않는 유해(有害)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오늘 한국이 군사적 억제를 강구하고 북핵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 집중하는 것은 내일 북한 비핵화를 목적으로 하는 ‘진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김태우 < 건양대 교수·전 통일연구원장 defensektw@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