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머슨퍼시픽은 골프·리조트업계에서 ‘이단아’로 통한다. 수요 침체로 다른 골프장과 리조트가 비용을 줄일 때 거꾸로 추가 투자에 나서 최고급 시설로 탈바꿈시켰다. 2010년 리츠칼튼CC를 전면 재건축·재개발해 ‘아난티클럽 서울’로 재단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 골프장을 모두 손보는 리모델링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만규 에머슨퍼시픽 대표가 직접 편지를 써가며 6개월간 회원들을 설득했다. 공사 진행 상황을 회원들과 공유하며 동의를 구했다. 이 골프장은 2012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한국 3대 골프장’에 이름을 올렸다.

에머슨퍼시픽의 ‘고급화 승부수’는 적중했다. 더 화려하고 세련된 골프장과 리조트를 원하는 고객 요구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이는 곧 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252억원, 영업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매출(472억원)과 영업이익(101억원)의 3~5배에 가까운 성과다. ‘최고급 리조트 전문 개발·운영회사’ ‘국내 유일의 리조트업체 상장사(코스닥)’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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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최고급 리조트로 확장

에머슨퍼시픽은 1988년 이중명 창립 회장이 설립했다. 이 회장은 초창기 부실 골프장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뒤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설립 이듬해인 1989년 충북 진천시의 중앙CC를 인수, 리모델링을 거쳐 1992년 재개장했다. 2000년과 2002년에도 각각 유명산CC와 프레야충남CC를 인수해 리츠칼튼CC(현 아난티클럽 서울)와 IMG내셔널CC(현 세종에머슨CC)로 재단장했다. 2006년에는 금강산과 남해 골프장까지 개장하며 한때 ‘남해에서 금강산까지’ 118홀을 보유할 만큼 회사가 성장했다.

고급 리조트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은 2004년 이 회장의 장남인 이만규 대표가 취임하면서부터다. 한국에 없는 리조트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더 좋은 골프장과 리조트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한국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시도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인데도 해변을 낀 골프코스나 리조트가 없는 게 늘 아쉬웠다”며 “경남 남해군의 아름다운 풍광이라면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힐튼 남해 골프&리조트 부지는 당시 남해군 소유였다. 남해군에서도 고급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선뜻 나서는 회사가 없었다. 당시엔 알려지지 않은 외진 곳이라 사업 위험성이 컸던 탓이다. 결과적으로 에머슨퍼시픽의 ‘도박’은 성공했다. 2006년 완공된 힐튼 남해 골프&리조트는 국내에 ‘고급 리조트’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이며 ‘한국 리조트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행업계의 ‘오스카(미국 최대 영화상인 아카데미상을 일컫는 말)상’이라 불리는 ‘월드 트래블 어워드’에서 9년 연속 수상하는 기쁨도 안았다.

이후 ‘금강산 아난티 골프&온천 리조트’(2008년)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경기 가평군)을 비롯해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 ‘힐튼 호텔&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까지 10년간 6개 프로젝트를 잇따라 성공시켰다.

“고객 프라이버시가 최우선”

에머슨퍼시픽은 회원을 모으기 위한 광고를 하지 않는다. 기존 회원이 지인을 소개하는 ‘입소문 마케팅’이 기본이다. 회사가 소유한 골프장 회원들이 클럽하우스 등을 이용한 뒤 자연스레 아난티 펜트하우스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전체 회원의 80%가량이 개인 고객이다.

고급 리조트인 만큼 회원 가운데는 유명인도 많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는 15채가량을 중국 일본 러시아 부호가 계약했다. 하지만 절대 고객 명단을 영업에 활용하거나 공개하지 않는다.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호텔도 운영하고 있다. 힐튼 남해와 힐튼 부산이 바로 그곳. 이 두 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힐튼호텔 직영점이다. 건물과 땅은 에머슨퍼시픽 소유지만 호텔은 미국 힐튼호텔이 직접 운영한다. 반면 그랜드힐튼서울 밀레니엄서울힐튼 힐튼경주 등 힐튼 이름을 단 다른 국내 호텔은 모두 힐튼이 이름만 빌려주고 운영은 다른 업체에서 맡고 있다.

호텔 운영을 직접하지 않고 전문회사에 맡긴 것은 에머슨퍼시픽의 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자신이 잘할 수 없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아난티 브랜드로 운영하는 펜트하우스는 70~90실 규모의 별장”이라며 “300실이 넘어가는 호텔 운영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넘어 英·美 시장 개척

올해는 해외 진출을 본격 추진한다. 지난해 10월 중국민성투자유한공사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1806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제주 서울 등 국내 리조트를 추가 설립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 상하이 항저우 하이난에 리조트 등 복합시설을 개발할 계획이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회원이 되면 중국 내 리조트도 이용할 수 있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도 리조트를 짓는다는 목표다. 글로벌 고급 리조트 체인망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새 시장 개척은 단순히 지역을 넓히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업영역도 적극 확장하고 있다. 에머슨퍼시픽은 이달 말 금융위원회에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에머슨자산운용’(가칭)을 등록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스탠다드차타드프라이빗에쿼티(SC PE) 부동산부문의 김태형 대표를 영입했다. 골프장 호텔 등을 개발·운영한 경험을 살려 다른 자산운용사와 기관투자가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복합시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