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설탕물만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보지 않겠습니까?”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1983년 펩시의 최연소 최고경영자(CEO)였던 존 스컬리를 애플의 CEO로 스카우트하면서 남긴 말이다. 스컬리와 잡스의 동행은 1년 만에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면서 끝났다. 이 때문에 스컬리는 ‘애플 최악의 CEO’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는 1985년 애플을 심각한 경영 위기에서 살려낸 CEO이자 스마트폰 개념을 만들어낸 ‘스마트폰의 아버지’로 재평가받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30년 전 스컬리가 세계를 바꾸기 위해 애플로 갔던 것처럼 그가 돌아와 시장을 뒤엎을 잠재력을 갖춘 기업들을 찾고 있다”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소비자 심리를 꿰뚫는 마케팅의 천재

스컬리는 1970년 30세의 나이로 펩시 마케팅 총괄 부사장에 올랐다. 당시 펩시는 확고부동한 1위 코카콜라에 밀려 매각을 고려할 정도로 경영 위기에 빠져 있었다. 스컬리는 두 가지 광고 마케팅을 기획했다. 첫째는 당시 떠오르던 마이클 잭슨 등의 스타를 펩시 광고에 등장시킨 ‘펩시 세대’라는 마케팅 캠페인이었다. ‘신세대의 선택은 펩시’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1975년 스컬리는 결정타를 날렸다. 눈을 가리고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중 하나를 골라 마시던 사람이 안대를 벗으며 “어! 펩시잖아”라고 외치는 내용의 ‘펩시 챌린지 테스트’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이 광고로 펩시콜라는 2류라는 인식을 깨고 ‘코카콜라의 경쟁자’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펩시콜라의 시장점유율은 6%에서 14%까지 수직 상승했다. 스컬리는 1977년 펩시 역사상 최연소 CEO로 임명됐다.

그는 1983년 잡스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애플의 CEO로 스카우트됐다. 이듬해인 1984년엔 조지 오웰의 유명 소설인 《1984》 콘셉트의 광고를 시도했다. ‘압제자’ IBM에 대항한 ‘혁신가’의 이미지를 애플에 씌우기 위해서였다. 이는 당시 애플2로 대표되는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에 들어맞았다. 애플의 매출은 1984년 15억달러로 전년 대비 55% 늘어났다.

실용적이지 않은 제품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애플의 성장은 잡스의 독단으로 삐걱대기 시작했다. 당시 잡스는 애플3를 설계하면서 소음 문제로 냉각팬을 제거했다. 애플3는 출시와 함께 발열 문제로 고장 문제를 일으켰고,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았다. 또 세계 최초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장착한 리사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당시 차 한 대 가격인 4000달러로 매겼다.

여기에 1985년 애플2의 매출이 70%에 이르렀지만 잡스는 투자자금을 리사와 매킨토시에만 집중해 애플 내에서도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스컬리는 혁신적이지만 소비자에게 실용적이지 않은 제품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 잡스에 반대했다. 이에 잡스는 스컬리를 교체하기 위해 애플의 임원을 모아놓고 신임투표를 했지만, 정작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났다. 심지어 공동창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마이크 마큘라도 잡스를 몰아내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스컬리는 잡스가 떠난 뒤 전체 직원의 약 20%를 해고했다. 또 애플을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만들면서 비용구조를 개선했다. 1986년 애플은 19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1985년보다 부진한 실적이었다. 하지만 스컬리는 애플에 등을 돌렸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설득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회사와 협력해 개발한 매킨토시용 앱(응용프로그램)으로 ‘DTP(desktop publishing)’라는 새로운 틈새시장에 집중했다. 스컬리의 틈새전략과 매킨토시2의 성공으로 애플은 IBM에 이어 2인자의 지위를 굳혔다. 애플 전문 잡지인 맥어딕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를 매킨토시의 첫 번째 황금시대라고 일컬었다.

미래 핵심기술 예측…스마트폰의 아버지

스컬리는 1987년부터 포터블, 모바일 컴퓨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7년 펴낸 《오디세이》에서 스마트폰의 원형인 ‘지식안내자’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컬리가 구상한 지식안내자란 사용자가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터치스크린 등 직관적인 방식으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기기다.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우며, 한번 충전하면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다. 스컬리의 안목을 토대로 1993년 애플은 ‘뉴턴 메시지 패드’를 출시했다. 지금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원형으로 인정받는 제품이다. 그는 뉴턴 메시지 패드에 설치된 ‘뉴턴 운영체제’를 다른 회사에 공개하면서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시초를 선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유명 정보기술(IT) 전문 저널리스트였던 월트 모스버그는 2013년 그의 마지막 칼럼에서 20년간 리뷰한 최고의 IT 제품으로 뉴턴 메시지 패드를 꼽았다.

하지만 뉴턴 메시지 패드는 고가에 소프트웨어, 필기능력, 배터리 사용시간에서도 스컬리의 구상에 못 미치면서 실패했다. 1993년 스컬리는 애플에서 떠났고, 1997년 잡스는 애플로 복귀했다. 그는 뉴턴 메시지 패드를 비롯한 제품을 단종시키면서 인력도 함께 해고했지만, 예외적으로 스컬리가 만든 뉴턴 메시지 패드 개발팀은 해고하지 않았다. 이들은 나중에 아이패드 개발팀으로 남게 됐고, 이후 아이폰을 만든다.

스컬리가 주목하는 미래 핵심기술은?

CNBC는 최근 “존 스컬리가 돌아왔다”며 “그가 13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서 공동창업자이자 사장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헬스케어, 소프트웨어산업 등에 걸친 13개 스타트업 가운데 마케팅 전문 빅데이터 분석회사인 제타인터랙티브에 주목하고 있다. 스컬리는 2007년 제타인터랙티브를 설립했다.

제타인터랙티브는 설립된 지 7년 만인 2014년 1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헤지펀드인 블랙스톤으로부터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1억2500만달러를 유치했다. 또 페이팔, 포드, 테스코, 소니, 이케아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면서 40%를 웃도는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제타인터랙티브는 2014년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촉망받는 회사’, 2015년엔 ‘100대 분석전문 스타트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스컬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빅데이터 기반 마케팅이라는 시장 트렌드와 1억달러가 넘는 자본 유치로 제타인터랙티브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