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 지식사회부 부장대우 kbi@hankyung.com
[한경데스크] 정의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얼마 전 신생아를 사고판 브로커가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니 금전거래 대상이 상상을 초월한다. 살인자도 돈으로 형을 낮출 수 있다. 그것도 법으로 가능하다. 대법원이 만든 양형기준에 의하면 판사가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감경 요소의 하나로 금전적 합의(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또는 합의가 안 될 때 하는 ‘공탁’이라는 항목이 명시돼 있다. 진지한 반성을 했거나 음주 등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처럼 판사는 형량을 계산할 때 공탁 여부 등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황금만능주의 단면 보여준 사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로비 의혹 사건은 돈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페이스샵으로 화장품업계 ‘신화’가 된 정 대표는 한 해 수임료가 91억원에 달할 정도로 국내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를 고문으로 둘 수 있었다. 명문대를 나온 부장판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도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다. 그 덕분인지 검찰이 회사 돈 횡령혐의를 못 찾았고, 항소심 구형량도 1심보다 6개월 줄여줬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막장드라마의 결말은 뻔하다. 같은 편끼리 자중지란이 나면서 검은 거래들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합법으로 포장한 법조계의 민낯은 검찰 수사에 앞서 여론의 심판대 앞에서 추궁당하고 있다.

법조계가 갈수록 혼탁해지는 이면에는 저급한 황금만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데는 코너에 몰린 피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법원·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들의 잘못이 크다. 범죄 혐의자를 위한 변론 행위 자체는 당연히 적법한 법률서비스다. 경험 많고 실력 있는 변호사의 수임료가 높은 것은 시장원리에도 부합한다. 문제는 과욕이다.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나와 사법연수원 기수가 같아서…”라며 편법을 일삼다 덜컥 탈이 난 게 정운호 사건의 핵심 포인트다.

제 식구 감싸기는 안 돼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형벌의 일종인 벌금마저도 비용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거래만능주의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을 키우고 부패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있는 법률서비스와 돈으로 살 수 없는 정의는 구별돼야 한다. 돈으로 정의까지 살 수 있게 해선 안 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돈으로 환산이 가능하고 돈으로 거래가 가능한 재화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한 대법관은 “살인이나 강도, 강간 등 흉악 범죄에 대해서까지 합의금으로 형을 깎는 양형기준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정운호 사건 수사를 하면서 ‘꼬리 자르기’나 ‘제 식구 감싸기’ 같은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치부들을 모조리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전관들이 노추(老醜·늙고 추함)를 버리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김병일 지식사회부 부장대우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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