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핵보유국 선포를 두고만 볼 것인가
36년 만에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폐막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 김정은 제1비서를 당의 최고수위인 당 위원장으로 포장지를 바꿔 추대한 것 이외에 새로운 것을 찾기는 어렵다. 당대회를 계기로 4년여의 수습기간을 끝낸 김정은이 명실상부한 그의 시대를 선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사회주의체제에서 공산당의 최고권력은 당의 행정을 담당하는 중앙위원회 비서국(서기국) 최고책임자인 총비서(옛 소련 서기장, 중국 총서기)가 맡는다. 옛 소련 시절 흐루시초프가 집권했을 때 스탈린 격하와 집단지도체제 확립 차원에서 제1서기란 직책으로 당의 최고직책을 수행한 바 있다. 쿠바 카스트로도 제1비서란 직책으로 통치했다. 제1비서는 여러 비서들 중에 첫 번째란 뜻이 내포돼 있다.

이번에 북한은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을 폐지하고 정무국을 신설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제1비서란 직책을 버리고 당 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 관점에서 당 행정의 최고책임자 지위를 넘어 당 전체의 최고지도자란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대회에서 북한은 예상되던 사상 이론적 조정, 개혁·개방과 관련한 조치, 새로운 통일방안 등과 관련한 내용 없이 경제·핵 병진노선에 따른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히는 데 주력했다. 북한은 ‘동방의 핵대국’임을 내세우고 핵억제력을 바탕으로 자강력 제일주의에 따라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정은은 세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김일성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을 포기하고 핵무기 고도화를 지속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결국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의 근원적인 동기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체제를 유지 계승하기 위한 물리적 강제력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이번 당대회가 ‘역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힌 데는 3대 세습의 수령체제가 완성됐다는 것과 이를 뒷받침하는 핵능력을 갖췄다는 것에 기초한다.

북한은 인도와 파키스탄 모델에 따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길 희망한다. 북한은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수소탄과 인공위성)’으로 강대국이 된 중국을 모델로 핵 보유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려 한다. 앞으로 북한은 전략적 도발을 자제하면서 대화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연초부터 계속된 핵·미사일 고도화와 관련한 북한의 도발은 당대회를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당분간은 핵실험 유보문제를 협상카드로 해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지, 평화협정 체결 등과 관련한 평화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우리 측에 대해서 대화와 협상의 문이 열려 있다고 하면서 먼저 군사당국자회담부터 하자고 주장했다. 북·미 평화협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군사회담을 제안하고 두 갈래 전략으로 남북 불가침협상과 북·미 평화협정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미국에 평화협정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한국의 대선 일정이 있는 향후 1~2년이 북핵 고도화의 결정적 시기란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이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전략적 인내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추진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북핵 해법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최종목표로 두고 중간단계를 설정해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시급한 북핵 고도화를 막는 조치와 평화협정의 전(前)단계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제를 연계해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이미 출구 없는 ‘끝장게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고유환 < 동국대 교수·북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