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발권력 논쟁보다 더 급한 정책금융 수술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에서의 한국은행 역할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발권력과 양적 완화 등 해석 나름인 용어 때문에 혼란이 가중된다. 한은 장부를 놓고 계산을 따질 일이다.

작년 말 한은 자산총액은 489조원인데 이 중 외환보유액인 외화증권이 74%인 361조원이다. 나머지는 국채 및 금융회사 어음대출 등이며, 수출입은행 출자금도 1조원이 넘는다. 한은은 무자본 특수법인이어서 자본금은 없고 적립한 잉여금 누계가 12조원이다. 자본금이 없는데 운영비용을 쓰고도 순이익이 남는 것은 발권력 때문이다. 87조원의 화폐발행부채는 이자부담은 없지만 금융회사에 빌려주거나 증권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가계와 기업이 보유한 화폐에 내재된 이자 때문에 순이익이 생긴다.

[다산칼럼] 발권력 논쟁보다 더 급한 정책금융 수술
화폐발행부채는 한은을 제외한 경제 주체가 보유한 화폐 총액과 일치한다. 이들 주체가 받아줘야 발행액을 늘릴 수 있다. 카드 사용이 늘어 화폐보유 유인이 줄었지만 5만원 고액권의 영향으로 화폐 발행액은 증가세다. 한은이 화폐를 찍어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자금을 제공한다는 표현은 미숙하다. 국책은행이 그 많은 화폐를 소화시킬 방법이 없다. 한은 재무상태표에서 보듯이 국책은행에 출자 또는 대출하는 자금은 통화안정증권발행 부채와 연결된다. 자산부채관리(ALM)기법에 따라 이자 비용을 부담하는 부채는 이자 수익이 발생하는 대출과 연계시키려는 것이 금융의 생리라 한은도 출자보다 대출을 선호한다. 그러나 국책은행으로서는 건전성 비율 유지를 위한 자본확충이 필수적이다.

한은의 출자 기피는 수출입은행 트라우마 영향도 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민영화된 외환은행에 직접 출자할 수 없던 한은이 수출입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수출입은행은 손실을 감수하고 외환은행 지분을 처분했으나 한은의 수출입은행 지분 13.1%는 그대로 남아 골칫거리다.

한은의 작년 순이익은 2조7000억원인데, 그중 절반은 정부 세입으로 납입했다. 순이익을 국고에 납입하는 대신 구조조정자금 이자를 부담하면 같은 효과다. 정부는 부족 자금을 국채로,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으로 조달한다. 한은과 국고와의 자금교류는 빈번하다. 한은이 국채를 매입하고 국고가 한은에 여유자금을 예치한다. 작년 말의 한은 자산에는 국채가 16조원 포함돼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빚이 중복적으로 계산됐다. 기업 회계에서는 연결해 상계할 사항이다.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속될 국고와 한은 간의 구조조정자금 배분 다툼은 실익 없는 명분론이다.

국책은행의 허술한 정책금융 수술이 보다 시급하다. 수출입은행이 조선업 선수금환급보증(RG) 때문에 대손을 몽땅 뒤집어쓴 것은 동일 업종에 리스크를 집중시킨 최악의 관리 실패다. 산업은행의 수많은 부실 자회사도 정책금융 실패의 부산물이다. 민간 금융회사가 부실 기업 자금을 줄일 때 국책은행은 오히려 늘렸다.

올바른 기업 전망으로 자금배분을 선제적으로 조정해야 금융회사가 산다. ‘비 올 때 우산 뺏기’라는 질책도 있지만 폭풍우가 예상되면 우산을 일부라도 거둬들여야 ‘구제 우산’을 구걸하는 비극을 막는다. 부실 정리는 시간을 끌수록 돈이 더 들어간다. 신속히 자금을 조성해 정교하게 수습해야 한다. 유관기관과 연계한 기능조정도 필요하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